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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13 5화: [그럴 수는 없다고] “그게 될 거 같아?” “유화야, 우리 잘 지냈잖아.” 그의 태연한 말에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안 될 것 같아. 예전처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거.” “내가 널 이성으로는 안 좋아한다 해도, 우리의 관계는 좋아했어.” “그게 더 비참해.” 반호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어,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어떻게 해줘?” “최대한 얘기할 일 없으면 좋겠어.” 그 말을 하는 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반호는 내가 자기를 죄인이라도 되는 양 취급해서 억울해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에게 느낀 배신감이 너무나 컸다. 그리고, 너무 좋아했다. 그게 다 부정당한 시점에서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었다. 특히 이렇게 반호를 마주보고 있을 .. 2025. 5. 31.
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12 기숙사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는 밖으로 나와 내리막길을 걸었다. 다행히 밥 먹는 때가 달랐는지 식당에서 반호와 마주치진 않았다. 나는 주머니 속에 든 담배와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걸었다. 주황빛을 내는 가로등 몇 개를 지나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낮에는 농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던 운동장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운동장 구석에 가서 쭈그려 앉았다. 도형 선배에게 배운 대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한유화.” “앗!”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 바람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담배를 흙바닥에 떨어트려 버렸다. 아, 두 개비밖에 안 남은 건데. 담배를 줍고 인상을 쓰며 일어나보니 반호가 서 있었다. “오빠?” “네가 왜 여기 있어?” 반호가 내 손에 들린 담배를 보자 표정이 어두워졌.. 2025. 5. 31.
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11 반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할 얘기 없어.” “난 있어. 그러니까 잠시만······.” “······알겠어.”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계단 한가운데서 이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로비 사이드로 걸어갔다. 반호는 여전히 내 손목을 잡은 채로 뒤따라왔다. 이러니까 소문이 이상하게 나지. 이 와중에도 모질게 내치지 못하고 얌전히 손목을 잡혀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무슨 얘기?” 나는 차가운 기운이 도는 기둥에 기대서서 물었다. “너, 담배 피워?” “피우든 말든, 오빠가 무슨 상관인데?” “언제부터 피웠는데? 너 담배 원래 안 피우잖아.” 반호가 인상을 썼다. “난 좀 담배 피우면 안돼? 오빠도 담배 피우잖아.” “안돼, 너는. 담배 피우지 마.” “······싫.. 2025. 5. 30.
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10 바닥에 깔린 종이박스에는 벌써 신발 자국이 찍혀있었다. 나는 껌 하나를 계산대에 올려두고 눈으로 더듬더듬 비슷해 보이는 것을 찾았다. “저걸로 주세요.”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직원이 뒤돌아 담배를 하나 꺼냈다. “에쎄 체인지요?” “아, 네 그거 맞는 거 같네요.” 나는 직원이 건네는 담배를 손에 쥐었다. 이제야 반호가 피우던 담배 이름을 알았다. 반호가 카페 테이블에서 담뱃갑을 치우던 잔상만으로 찾자니 맞는 걸 고르기 힘들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나오려다 다시 들어가서 붉은색 라이터도 샀다. 달달한 맛이 나는 껌을 씹으며 담배와 라이터를 가방 안에 넣었다. 이제 진짜 강의실에 갈 시간이다. 아마도 반호가 앉아 있을. 4화: [신경 쓰지 마] 강의실에 들어가니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2025. 5. 30.
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9 아까 먹다 남은 아메리카노 두 잔이 탁자 위에서 나란히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립이 묻어 있는 방향으로 흰색 머그잔을 들었다. “오늘 너무 많은 립스틱을 먹었어요.” 나는 인상을 쓰며 잔을 내려놓았다. 빈속에 마셨더니 커피의 쓴맛밖에 느낄 수 없었다. 몸이 점점 저릿해져 왔다. 도형 선배는 은근한 눈빛으로 내 잔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선배는 왜?” 나는 아래로 떨구던 고개를 들었다. “여자를 너무 많이 만나서.” 도형 선배가 시원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양아치.”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욕했다. “내가 왜?” 도형 선배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저녁도 안됐잖아요.” “축하 인사를 받다 보니.” “인기가 많네요, 아주.” “왜 그래? 반호한테 화난 거 .. 2025. 5. 30.
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8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벽화 동아리도 있고, 오후에 교양수업도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밖에 나왔다. 혹여 식당에서 반호와 마주칠까 봐 늘 먹던 아침도 걸렀지만, 배고픔도 느낄 수 없었다. 눈이 너무 부어서 나는 알이 없는 뿔테안경을 쓰고 동아리방 문을 열었다. “어, 유화 왔어? 안경 썼네? 원래 눈이 나빴던가?” “아뇨, 그냥.” 우혁 선배의 인사에 동아리 사람들의 시선이 다 내게로 향했다. 그중에 반호도 있었다. 멀리 서 있는 반호와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반호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자기가 차놓고, 꼭 자기가 차인 것처럼. “이번 도안은 이걸로 하자.” 우혁 선배와 내가 도안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 2025.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