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는 밖으로 나와 내리막길을 걸었다. 다행히 밥 먹는 때가 달랐는지 식당에서 반호와 마주치진 않았다. 나는 주머니 속에 든 담배와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걸었다. 주황빛을 내는 가로등 몇 개를 지나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낮에는 농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던 운동장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운동장 구석에 가서 쭈그려 앉았다. 도형 선배에게 배운 대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한유화.”
“앗!”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 바람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담배를 흙바닥에 떨어트려 버렸다. 아, 두 개비밖에 안 남은 건데. 담배를 줍고 인상을 쓰며 일어나보니 반호가 서 있었다.
“오빠?”
“네가 왜 여기 있어?”
반호가 내 손에 들린 담배를 보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물어볼 말인데?”
“유화야, 내가 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잖아.”
“······내 맘이야.”
나는 담배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래도 떨어진 걸 또 입에 물기는 그래서 나는 헐빈한 담뱃갑을 열어 마지막 남은 담배를 꺼냈다. 그래도 세 번째로 불을 붙이는 거라 자연스러워 보였던 것인지 반호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도형 선배가 알려줬어.”
“아, 걔가······하. 그게 뭐 좋은 거라고 걔한테 배워.”
“그럼, 오빠가 알려주지 그랬어.”
반호는 어이없어하다가 자포자기하고 자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능숙하게 불을 붙이는 반호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그의 하얀 얼굴이 불빛에 잠시 환하게 밝아졌다가 어둠에 가려졌다. 내가 너무 사랑했던 까칠한 옆얼굴, 아마 아직도 사랑할. 나는 연기를 가늘게 뿜었다. 옆에 선 반호한테서도 같은 담배 냄새가 났다. 그러고 보니 반호와 같은 걸 샀었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나랑 같은 거네.”
반호가 나를 흘깃 보고 말했다.
“어쩌다 보니. 눈에 익어서, 같은 걸 사버렸어.”
“난 이것만 피거든. 너무 두꺼운 건 싫어서. 너도 너무 두꺼운 건 피우지 마, 독해.”
“그래.”
“내가 너랑 같이 담배 피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반호가 어설프게 연기를 내뱉는 나를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나라고, 뭐 피우면 안돼?”
“너 완전 바른 생활 소녀잖아.”
“내가?”
“내가 봐온 너는 그래. 성실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말도 잘 듣고.”
나는 발로 흙바닥을 툭툭 찼다. 담배가 짧아지고 있는 게 내심 아쉬웠다. 반호와 같이 있으면 불편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싸우지 않고 이야기하니 예전에 반호와 잘 지냈던 생각이 났다.
“박도형이랑 친해?”
한참 조용히 있다 반호가 내게 물었다. 그의 눈에 불안함이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친해질 것 같아. 이제.”
“······박도형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 걔 좋은 애 아니야. 너도 소문 들었을 거 아니야? 그 소문 중 대부분이 맞아.”
도형 선배에 대한 소문이라면 대충 알고 있었다. 잘난 얼굴을 무기로 여자를 바꿔가며 만난다더라. 클럽 죽돌이다. 박도형이랑 얽힌 여자애들은 끝이 안 좋다더라. 기타 등등.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까지 도형 선배와 친하지도 않고. 혹할만한 외형을 가진 건 부정할 순 없지만,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 포커스가 다 반호에게 맞춰져 있었으니까.
“지금 내가 느끼기에는 괜찮은 사람이야.”
내 대답에 반호는 좀 당황해한 것으로 보였다.
“잠시뿐이야. 처음만 잘해줘, 걔는. 여자 꼬시려고. 걔랑 가까이 지내다가 망가진 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내 인간관계는 내가 알아서 해.”
나는 조금씩 속에서 차오르는 화를 참으며 말했다. 처음에 잘해주다 모른척한 사람이 누군데. 이렇게 마음이 망가지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네가 걱정돼서 하는 소리야.”
“나는, 지금 오빠가 나한테 이런 소리 하고 있는 게 이해가 안돼. 오빠가 뭐 내 보호자야? 무슨 상관인데. 내가 누굴 만나든, 누구랑 친하게 지내든.”
나는 담배를 바닥에 던져 신경질적으로 발로 지져 껐다.
“친구로서 할 수 있는 말이잖아. 이 정도 걱정도 나는 하면 안돼?”
“걱정을 왜 하는데, 오빠가.”
나는 꼿꼿이 서서 반호에게 말했다. 반호도 짧아진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그럼 걱정을 시키지 마! 담배 한번 안 피우고, 얌전히 있던 애가 갑자기 이러는 데 내가 걱정이 안돼?”
나는 지지 않고 반호를 쳐다봤다.
“이유는 도형 선배한테 있는 게 아니라, 오빠한테 있어.”
“유화야······.”
“제발, 그냥 모른 척해줘. 나 좀 내버려둬 줘. 나는 요즘 오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아. 쪽팔리고, 후회돼.”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마무리했다. 나는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반호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한숨을 쉬며 반호가 내 손을 조심히 감싸 잡아 내렸다. 흐릿한 시야로 반호의 얼굴이 보였다. 반호가 입을 열었다.
“우리, 그냥 예전처럼 그렇게, 지낼 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