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할 얘기 없어.”
“난 있어. 그러니까 잠시만······.”
“······알겠어.”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계단 한가운데서 이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로비 사이드로 걸어갔다. 반호는 여전히 내 손목을 잡은 채로 뒤따라왔다. 이러니까 소문이 이상하게 나지. 이 와중에도 모질게 내치지 못하고 얌전히 손목을 잡혀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무슨 얘기?”
나는 차가운 기운이 도는 기둥에 기대서서 물었다.
“너, 담배 피워?”
“피우든 말든, 오빠가 무슨 상관인데?”
“언제부터 피웠는데? 너 담배 원래 안 피우잖아.”
반호가 인상을 썼다.
“난 좀 담배 피우면 안돼? 오빠도 담배 피우잖아.”
“안돼, 너는. 담배 피우지 마.”
“······싫어.”
나는 한쪽 눈썹을 올렸다. 다 큰 성인 붙잡고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더러 소중한 동생이라더니, 진짜 동생처럼 대하고 싶은 걸까?
“고집부리지 말고. 피우지 마. 몸에 안 좋아 진짜.”
“담배 피우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너······나 때문에 이러는 거야?”
“아니야. 나도 성인인데 필 수도 있지.”
나는 격양된 그를 가라앉히려 부러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호가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아무튼 피우지 마, 응?”
“왜? 죄책감 들어서 그래? 오빠 때문이 아니고, 그냥 내가 피고 싶은 거라 피는 거야. 그까짓 담배 피우는 게 뭐라고 이래.”
“너 담배 피울 줄도 모르잖아. 누가 알려줬어?”
“하, 진짜······아직 안 피웠어.”
“뭐?”
“아직 안 피웠다고. 이제 피울 예정이고. 왜? 오빠가 알려주게?”
“한유화!”
비꼬는 내 말투에 화난 반호가 잡고 있던 내 손목을 확 내쳤다.
“아······!”
내가 아릿한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감싸자 반호가 놀라 다시 내 손목을 잡으려 했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뒤로 몸을 물렀다.
“괜찮아? 미안해.”
“잡든지, 풀던지 하나만 해.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유화야, 난 네가 걱정돼서······.”
“내가 담배를 피우든 말든, 앞으로 뭘 하든 간에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 말을 하자마자 내 눈에 뜨거운 기운이 가득 찼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리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반호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꾹 참으며 밖으로 나갔다.
*
건물을 나와 나는 무작정 걸었다. 뒤돌아보니 반호가 따라오지는 않았다. 내가 담배를 피든 말든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한데? 모순적인 그의 행동에 이젠 질렸다. 반호의 어떤 말도 이제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담배를 한 번도 피워보지 않았지만 담배가 땡기는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나는 학교 안 흡연 부스로 향했다. 매캐하고 쓴 담배 냄새가 가득했다. 남자 한 무리가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구석 벤치에 앉았다.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한 개비를 입에 물었지만, 쉽사리 불을 붙일 수 없었다. 약간은 푹신한 감촉의 담배를 입에 문 채 나는 도형 선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선배, 뭐해요?]
[웬일이야? 먼저 연락하고?]
[나 담배 좀 알려줄래요?]
[바로 행동에 옮기는 거야? 너 어딘데?]
[학교 안이요. 학교 카페 맞은편]
[조금만 기다려]
나는 입에 문 담배를 빼서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 없을 때 피우지 말고, 좀 기다려]
[알겠어요]
몇 분을 멍하게 앉아 있었을까, 흡연 부스 맞은편 주차장에 선배의 차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도형 선배가 차에서 내려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도형 선배는 급하게 온 티가 났지만 웃는 걸 보니 기분은 좋아 보였다.
“내가 너 담배 과외하러 여기까지 와야 하나?”
도형 선배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언제는 담배 피우고 싶으면 연락하라면서요?”
“이런 말은 또 잘 듣네.”
“고마워요, 와줘서.”
“내가 말했잖아, 담배 친구 생기면 환영이라고.”
도형 선배가 재킷 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나도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자신의 담배를 꺼내려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언제 샀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선배랑 헤어지고 나서 바로?”
“실행력 좋네. 그럼 그걸로 해. 내 것은 더 센 거라.”
도형 선배가 불쑥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담배 줘 봐.”
순순히 담뱃갑을 내밀자 도형 선배가 한 개비를 꺼내 내 입에 물려줬다. 몸을 기울여 가죽 장식이 된 비싸 보이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줬다. 이어서 자신의 담배에도 불을 붙였다. 그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며 연기를 빨다가 나는 쿨럭거렸다. 매운 연기가 목을 따갑게 쳤다.
“천천히, 빨아 봐.”
도형 선배가 그런 내가 웃긴지 신기하게 관찰했다. 따가움을 참으며 나는 몇 모금 더 빨다가 결국 담배를 입에서 빼고 손에 든 채 숨을 몰아쉬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도형 선배가 담배를 빨면서 내 모습을 관찰하듯 쳐다봤다.
“너 진짜 웃긴 애야. 재미있어.”
“뭐가 재밌어요? 아우, 기침이 멈추질 않네.”
나는 쿨럭거리며 눈물을 훔쳤다. 도형 선배가 손을 뻗어 내 눈물을 그의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저지할 행동이었지만, 오늘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나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도 매운 감각 때문에 잠시 반호 생각은 잊었다.
“많이 힘든가?”
나를 마주 보고 있던 도형 선배가 내 옆에 와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며 물었다.
“글쎄요.”
“많이 힘드네, 응. 안 피던 담배도 피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 뭐. 그렇다고 하자.”
도형 선배가 얄밉게 말하고선 담배 연기로 도넛 모양을 만들었다.
“나 놀리는 재미로 여기 온 거죠?”
“당연하지. 내가 좀 재미 추구형 인간이라.”
“나 참······.”
“혼자 궁상떨고 있어봤자 너만 손해야. 조반호 잘나긴 했지만, 걔 하나 때문에 네가 속 썩고 있을 필요는 없지. 잘난 남자는 많잖아?”
도형 선배가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천연덕스럽게 가리켰다.
“이래서 잘생긴 남자들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인정해 주는 건가?”
“······너무 자신감이 넘쳐.”
내 말에 도형 선배가 킬킬 웃으며 재를 떨었다. 도형 선배와 내 담뱃대가 어느새 짧아졌다. 한 번 더 입에 갖다 대려는데, 도형 선배가 내 것을 가져갔다.
“뭐 그렇게 아껴. 그러다 손 데여. 적당히 빨고 그냥 버려.”
도형 선배가 자기 것과 내 것을 모아 쓰레기통에 던져 골인시켰다.
“적당히, 가볍게, 즐길 만큼만. 알겠지?”
“그게 담배 피우는 철학이에요?”
“나는 그래. 너 담배 맛 좀 봤다고 줄담배 피우지는 말고.”
확실히 도형 선배와 떠들어서 그런지, 혹은 담배 때문인지 반호 때문에 갑갑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또 기숙사 가서 반호 볼 생각하니까 마음에 무거운 납덩이가 앉은 것 같은 기분이지만.
“담배 줘봐.”
“왜요?”
나는 의아해하며 담뱃갑을 도형 선배에게 내밀었다. 도형 선배가 그걸 열더니 담배 한 뭉치를 뽑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뭐 하는 거예요?”
“담배 과외 값.”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담뱃갑을 보니 두 개비 밖에 남지 않았다.
“농담이고, 너 오늘 진짜 줄담배 피울까 봐 그래.”
“안 그래요.”
“그건 모르지? 내일 또 만나주면 그때 돌려줄게.”
“내일?”
“안 만나주면 내가 다 피워버릴 거야.”
“어차피 선배는 두꺼운 것만 피우면서 내걸 왜?”
“연락해, 또.”
도형 선배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미련 없이 재킷에 손을 꽂고 유유히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처음보다 가벼워진 담뱃갑을 가방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