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구조이론과 반영이론으로 본 <채식주의자>
책 『채식주의자』는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으로 뛰어난 상징성과 구성력으로 찬사를 받았다. 지금부터 구조이론과 반영이론을 바탕으로 소설을 해석해 보겠다.
구조 이론: 문학 작품 자체 안에서 일어나는 관계와 구조에 집중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예: 인물, 사건, 상징)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의미를 만드는지 분석하는 방법.
작품 내부의 '짜임새'와 '구조'가 핵심.
반영 이론: 문학 작품이 현실 사회를 어떻게 드러내고 반영하는가에 집중.
문학이 사회, 경제, 정치 등 현실 세계의 문제나 모순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관점.
1. 구조이론
『채식주의자』는 개별적으로 발표된 세 편의 중편소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을 연작소설로 묶은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혜’로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다. 하지만 어떤 꿈을 꾼 이후로 채식을 선언하고, 그로 인해 가족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이 소설의 특이점은 세 작품의 화자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하지만 화자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하고 관찰하며 불가해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영혜’이다. 각 작품의 화자인 남편, 형부, 인혜 역시 영혜의 변화로 인해 내적 자아의 갈등을 보여준다. 화자들이 영혜와의 갈등, 충돌, 화해의 과정을 밟으며 자신의 자아를 공고히 하거나 변형하거나 확대해나가는 과정이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으로 연속되는 서사구조의 핵심 원리로 작동한다.
세 사람의 시선으로 ‘영혜’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려하는지, 그리고 왜 그것을 넘어 인간이 아닌 ‘식물’이 되려 하는지 독자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한다.
먼저, 남편은 바뀐 ‘영혜’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했던 ‘평범한 아내’의 모습을 기대할 수 없자 그는 그녀와 갈등을 빚고 끝내 이혼한다.
형부는 탐미주의에 빠져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써 영혜에게 접근할 뿐 영혜가 왜 변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도 고민하지도 않는다. 형부는 영혜의 몽고반점으로 인해 잠재되어 있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사회의 윤리규범과 충돌하게 된다.
언니인 인혜는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영혜에게 안타까움을 가지고 변화 이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데, 그럼에도 인혜는 사회 규범을 지키며 충실히 살아왔던 사람이기에 인간이기를 탈피하는 영혜를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녀는 영혜가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받았던 폭력과 폭언이 현재 영혜가 망가진 원인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한다.
결국 세 사람 다 ‘영혜’를 보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를 도울 수도 없고, 그녀의 변화 원인을 찾는데도 실패한다. 이런 서사구조로 독자로 하여금 폭력에 노출된 ‘한 인간’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2. 반영이론
‘채식주의자’에서 반영된 사회 현실로는 첫째, 가부장제. 둘째, 사회의 억압이 있다. 우선 가부장제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알아보겠다.
1) 가부장제
이 소설에서 가부장제가 두드러지게 보이는 인물 2명이 있다. 바로 영혜의 남편과 아버지이다. 먼저 남편은 영혜와 결혼한 이유가 ‘평범해서’ 일 정도로 사회에서 튀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인물이다. 육식을 ‘평범한’ 것으로 여기는 그에게 채식은 ‘특별한, 과도한, 불편한’ 것이다. 동일성으로 회수되지 않는 낱낱의 차이들을 두려워하는 그는 아내의 꿈 이야기를 무시하고, 고기반찬을 차리지 않고 성욕을 채워주지 않는 아내를 비난한다. 이런 모습에서 여성을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고, ‘전형적인 아내’ 이미지만을 원하는 남성중심주의가 보인다.
아버지는 영혜에게 폭력과 폭언을 행사한 인물이다. 영혜가 어릴 때 개를 오토바이에 묶어 끌고 다닌 후 그 개를 먹는 폭력성을 보여준다. 이것이 훗날 영혜의 트라우마가 되어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육식(인공적으로 가동된 고기)은 동물에게 폭력을 행사한 뒤 나오는 산물이므로 그녀의 육식 거부는 폭력의 거부로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폭력성은 영혜가 육식을 적극적으로 거부할 때도 심하게 표출된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영혜가 탕수육을 먹지 않으려 하자 다른 가족들에게 그녀의 팔을 붙잡게 하고 억지로 탕수육을 먹게 한다. 처음엔 채식을 고집하는 딸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뒤에 따른 행동은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것에 대한 분노의 모습으로 사랑이 아닌 명백한 폭력이었다.
이 소설은 여성의 존엄성을 침범하는 가부장적인 남성들을 보여줌으로써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2) 사회의 억압 : 페르소나를 강요하는 사회
인간은 사회에서 규범을 지키기를, 평범하기를 강요당한다. 영혜는 평범한 여성이었으나 한 가지 ‘차이’ 점이 있었는데 그녀는 유독 브래지어를 하는 것을 싫어했다. 여성이 브래지어를 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그래야 한다’고 당연시되고 있다. 그러지 않았을 때 통상적으로 ‘이상한’ 여자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영혜에게 브래지어는 자신의 신체를 답답하게 하는 하나의 억압이었다.
채식주의자이길 선언하면서 영혜는 사회적 규범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탈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냉장고의 고기를 다 버리고, 부부동반 회식자리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숲에서 물구나무를 서는 기행을 한다. 이런 그녀의 행보는 주변인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남편과 인혜는 그녀의 변화를 '병적인 것'으로 보고 꺼린다. 하지만 영혜의 행보는 그동안 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안에 감춰 눌러놓았던 ‘폭력’ ‘여성성의 강요’ 등으로 상처 입은 영혼이 밖으로 뛰쳐나온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억압에 대응해 자해를 하고, 기행을 일삼는 행동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것으로 소설은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를 반영, 고발한다.
이상으로 『채식주의자』를 구조이론, 반영이론으로 분석하였다.
『채식주의자』는 구조이론으로는 세 화자가 한 인간을 관찰하는 상징성이 풍부한 연작소설이었고, 반영이론으로는 가부장제와 사회의 억압이 인간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그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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