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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주 <나의 천사> 후기 – "천사를 향한 동경은 언제나 추락을 예비한다." (줄거리,등장인물,책 리뷰)

by 0622 2025. 8. 16.

읽게 된 이유

이희주 장편소설 <나의 천사>를 읽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최애의 아이>를 읽고 이희주 작가의 문장에 매료되어 도서관에 가서 이희주 작가의 책을 있는 대로 다 빌려왔다. 

이렇게 한 작가의 책을 주구장창 읽는 건 김영하 이후로 처음이다
 
그렇게 <성소년>, <환상통>을 읽고 그다음으로 <나의 천사>를 읽게 되었다. 
<성소년>에 비해 <나의 천사>가 재미가 없다는 한 리뷰를 보고, 보지 말까 싶기도 했지만 
이미 이희주의 장편 2권을 읽고도 이 작가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정도면 나는 이 작가의 문체를 사랑하는 것이니 스토리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읽자' 하고 자홍색(마젠타)의 기이한 표지를 한 <나의 천사>를 읽기 시작했다. 
 

책 표지

 

책 표지 디자인: 안재원 @wonsmoon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인상적인 책 표지 작업을 하는 예술가다. 
 
쨍한 핑크 호수에 떠 있는 하얀 아기. 
마치 천사를 향한 사람들의 추하고 원색적인 욕망이 호수로 표현되어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위를 평온하게 떠 있는 무구한 존재, 아기. 
그들의 넘실대는 욕망이 고인 웅덩이에서 유영하는 것 같다. 
 
표지에 대한 첫인상은 강렬했지만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책 내용과 어울리는 표지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천사가 아기로 표현된 것이 조금 아쉽다. 
이오같은 소년의 모습이었으면 어떨까. 
(그래도 모든 천사들을 통칭할 수 있는 존재가 아기였겠지?) 
 
 
<나의 천사>는 천사라는 아름다운 로봇이 사고 팔리는 상상의 세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셰계관과 천사에 대한 정보를 작가가 잘 구축해 두었다. 꽤 방대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장편을 읽다보면, 뭐가 뭐였는지 까먹는 일이 많아 읽다가 기억이 안 나면 앞으로 돌아가서 또 읽어야 하는 게 번거로워서 노트에 정리하면서 읽었다. 

책 읽으면서 메모한 흔적


이것도 책이 재미있으니 이런 정성을 쏟게 된다.

나는 본래 장편은 잘 읽지 않는다. 단편집 위주로 읽는다. 
그런데 이희주 작가의 책은 너무 재밌어서 장편이어도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각설하고,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은 것(세계관 / 천사의 특징 / 자비천사)들을 정리해보았다.

 

'나의 천사' 세계관 정리

 
성형을 하지 않은 ‘자연인’이라는 사실이 흠처럼 여겨지는 시대. 
'천사'(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가 존재하는 시대이다. 과거에는 천사의 가격이 매우 비싸, 부유층만 소유할 수 있었고 일반인들은 감히 가질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급형 천사가 나오며 더욱 대중적으로 소비된다. 

사람들은 천사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탐미한다. 
애인, 배우자, 가족, 직원을 천사가 대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천사의 지나친 아름다움에 비해 자신이 너무 추하다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하거나 자신이 천사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없음에 절망해,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천사에 대한 인기는 식지 않는다. 
 
여러 천사 제작자가 있지만, 그중 선우의 실력이 최고로 뽑히고, 그의 작품이 유독 인기가 많다. 
장인이라 불리며, 천사를 시리즈로 내고 있다. 
장미정원이라고 불리는 선우의 아틀리에에서 고아인 아름다운 아이들을 모아 캠프라는 명목으로 지내게 하고, 학대? 성추행? 했다는 추문이 돌고 있다. 참고로 장미정원에서는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개인간>이 제작되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선우가 죽고 난 뒤, 선우의 천사 제작사 '관용사'는 천사 대중친화적 마케팅을 추진한다. 

'천사'에 대한 정보

천사는 구슬을 가지고 있고, 그 구슬을 뽑는 자, 즉 주인(구매자)에게 각인된다.
주인이 죽으면 천사를 다른 이가 소유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작동 자체가 멈춘다. 
유산으로 남겨주는 것도 원칙적으로는 금지하지만, 암암리에 하고 있다. 
사람들은 본인의 필요에 맞게 천사를 훈련시킨다
섹스봇으로 쓰기도 하고, 친구, 또는 죽은 가족 대용(원하는 얼굴로 주문 제작이 되나 보다) 등으로 쓰기도 한다. 

'자비천사'는 무엇인가?


자비천사를 보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괴담이 있다. 
자비천사는 개개인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비천사는 구슬을 여러 번 뽑아 사용할 수 있어, 주인이 바뀔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 

천사와 황새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작품. <천사와 황새>는 연극과 영화가 있다. 주로 천사역은 인간이 아닌, 천사가 맡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까지가 아직 책을 안 읽은 분들을 위한 내용이고 
이다음부터 스포가 나오니, 아직 안 읽은 분들은 책 읽고 나서 보시길! 등장인물 소개까지는 책 이해를 위해 읽어도 괜찮긴 하다.

그리고 이 책 초반부(3부 1 챕터)가 좀 지루한 편이다 
그래도 참고 보면 아주 재미있어지니 부디 일찍이 책 덮지 마시고 인내심을 갖고 더 읽어보시길 



'나의 천사' 등장인물  소개 (스포 주의)

 
등장인물이 꽤 많다. 각 챕터마다 스토리를 이끄는 인물도 다르고. 우선 가장 중심이 되는 세 인물을 소개하겠다. 
 
유미
아빠는 유미의 외모를 창피해하며, ‘자연인’ 신념을 지닌 엄마와 자주 다툰다.

부모님 몰래 '천사'에 대한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정보를 찾아본다. 
열세 살에 친구들과 자비천사를 보러 갔다가 이오를 만난다. 이오를 짝사랑한다. 
이후 자비천사를 본 탓인지 부모님이 죽고, 이모의 손에서 자란다.
이오 또한 죽었다는 말을 환희에게서 듣는다.
 
성인이 되어 이모가 운영하던 미루클린홈(죽은 사람들 집을 대신 정리해 주는 업체)을 이어받아 일한다. 
일하던 중 우연히 망가진 이오를 발견한다. 
 
미리내
소심한 소년. 전교에서 유일하게 뚱뚱하다는 이유로 어릴 적 놀림을 받았다. 수학여행에서 ‘가장 못생긴 학생’을 뽑자는 교관의 제안에 아이들에 의해 강제로 지목된다. 모두의 웃음거리가 된 순간, 미리내는 평생 씻을 수 없을 수치심을 느낀다. 
살이 빠지고, 무척 아름다워진다. '시온'이라는 이름의 연기자로 데뷔했다. 라이징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최초로 <천사와 황새>에서 천사역을 연기하는 인간에 선정된다. 
선우가 죽은 뒤, 그의 추악한 실체를 류를 통해 밝히고자 노력한다. 
 
환희
거짓말쟁이 소녀. 가난한 집의 딸이다.
꽤 예쁘장한 외모로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것을 우위 삼아 교활하게 친구들을 쥐락펴락한다. 
특히 미리내를 무시하고 괴롭힌다. 
자비천사가 자신들이 사는 아파트단지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친하게 지내는 유미와 미리내에게 보러 가자고 한다. 
 
성장하고, 자신이 그다지 예쁜 축에 들지 못함을 깨닫는다. 
고등학교 미술 선생과 결혼하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어릴 적 무시했고, 자신의 손아귀에 있었던 친구 미리내가 몰라보게 아름다워져 배우로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고 질투해 미리내에 대한 악플을 단다. 
 
그 외 등장인물 소개
 
이오
유미가 짝사랑했던 소년. 
외모가 누가 보아도 뛰어나다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으나, 유미는 이오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열세 살에는 어떤 젊은 남자와 함께 살았다. 
천사인지? 자비천사인지? 인간인지? 정체를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선우 
관용사의 천사 제작자. 장미 정원의 주인 
 

미리내의 대역 배우. 고아.
어릴 때 장미정원의 여름캠프에 참가했다. 류가 선우가 생전 마지막으로 제작하던 천사의 모델이라는 말이 있다.
이 천사는 선우가 제작 중에 사망해 미완성 상태이다. 
외모는 특출 나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미리내와 닮았다. 미리내를 짝사랑한다.
 
민성기
부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과거 형사일을 한 것 같다.  현재는 흥신소(불륜 증거 찾는 위주)를 하고 있다.
아내를 잃고 대신 천사와 지냈는데, 천사가 아내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천사를 싫어하게 되었다. 
 
현수
유미의 회사 직원. 
사이비에 있다가 탈출했다. 그래서 바깥세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유미를 짝사랑한다.
 
우형규
코미디언? MC
'우형규쇼'라는 인기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기가 많다.
진짜(인간)인지 가짜(천사)인지를 맞추는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윤조
천사를 만드는 공장에서 천사의 부품인 뼈를 깎는 일을 하고 있다.
특별히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일을 잘하고 있다.
사람들이 천사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것에 반해, 천사를 보고도 아름다움이나 감흥을 느낄 수 없어 고민한다.
 
남자
윤조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 
자기 숙소에서 자신만의 천사를 자체 제작 중이다.
윤조와 가깝게 지내며, 서로의 숙소를 오가기도 한다. 
 

'나의 천사' 자세한 줄거리
(강한 스포 주의 + 분량 주의)

환희가 주공아파트에 자비천사가 산다는 정보를 듣고 유미와 미리내에게 같이 보러 가자고 설득한다. 
세명은(모두 13살) 자비천사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 집을 찾아간다. 
막상 찾아가니 그냥 외모가 조금 뛰어난 청년이 있었다. 그리고 이오가 있었다. 
세명은 잘못 찾아간 것이라 여기며 실망하고 그 집에서 나온다.
그 뒤, 유미의 부모님이 죽고 환희의 물고기들이 죽는다. 
그래서 그 남자가 자비천사일 것이라 짐작한다. 
아파트에서 누군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유미는 그게 이오라고 생각한다. 
확실하게 자살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 채, 다른 곳에 있는 이모집에 살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세명은 모두 성인이 되었다. 
미리내는 환골탈태하여 배우가 되었고, 환희는 주부, 유미는 청소업체 사장?이다. 
미리내는 자신에게 악플을 다는 환희를 초대하고 
환희를 유혹해 하룻밤을 보낸다. 
(아마 아름답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를 아는 인물이라 포섭하려는 의도였는 듯)

미리내는 천사를 몹시 싫어하며, 천사를 반대하는 조직(천사 러라이트 운동)에서 일한다. 
류와 함께 선우의 추함을 세상에 알릴 계획을 추진한다. 
계획은 류가 유형규쇼의 생방송에 출현하여 장미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폭로하는 것. 
 
환희는 하룻밤만 같이 보내고 자신을 모른 체하는 미리내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끈질기게 미리내에게 연락한다. 
하지만 미리내는 환희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류는 미리내를 몹시 사랑하지만, 미리내는 류에게 쌀쌀맞다. 
류는 자신의 애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며 
민성기가 운영하는 흥신소에 찾아온다. 
민성기는 류의 행동을 보고 그가 천사가 아닐까 의심한다. 
 
유미는 현수와 관계를 가지는 사이지만, 현수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현수는 유미에게 사랑을 원한다. 
유미는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던 중 창고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오를 발견한다. 
의뢰인에게 알리지 않은 채 유미는 이오를 자신의 집에 데려온다. 
원래 천사의 구슬은 한번 뽑으면 다시 각인이 되지 않는데
유미가 뽑자, 이오는 유미를 주인으로 각인한다.
 
이오는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전 주인에게 어떤 훈련을 받은 것인지
틈만 나면 입을 맞추려 하는 섹스봇이 되어 있었다.
유미는 어릴 적 순수했던 첫사랑을 생각하며
유미는 이오를 섹스봇으로 쓰지 않고, 자신이 기억하던 이오로 되돌리려 노력한다. 
 
이오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 고민하던 유미는 수리를 위해 천사 제작자를 찾아간다.
제작자는 이오의 구슬을 보고 옛날의 희귀한 모델이라며 비밀 모임에 참가해 이오를 위한 부품을 찾아보라고 한다. 
 
유미는 모임에 참석한다. 그곳은 <천사와 황새> 흑백 영화를 보고, 파티를 하는 모임이었다.
모두 부유층에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유미는 이들에게 부품을 요청하지 못할 것 같아 실망하고 있던 중 그곳의 직원이 부품을 만들어주겠다며 유미의 집에 찾아가겠다고 약속한다.
 
한편, 류는 우형규쇼에 시온인 것처럼 위장하여 출연한다. 
류는 이 폭로로 미리내가 피해를 볼 것을 우려해, 우형규쇼 이후 서로 절연하기로 약속한다. 
민성기도 이 쇼의 방청객으로 참석한다. 
출연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맞추는 코너로 
출연자와 방청객이 1:1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에 민성기가 당첨된다.
민성기는 앞에 있는 인물이 시온이 아닌, 류이며
류는 천사라고 확신하고 그를 목 졸라 살해한다. 
 
미리내는 유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유미의 집을 찾아간다. 
(환희가 유미가 자살했다고 미리내에게 거짓말을 했었고, 미리내는 철석같이 그 말이 사실인 줄 알고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자신이 유미를 사랑해서, 자비천사를 본 후 유미가 죽었다고)
그런데 도착해 보니 부르지도 않은 환희가 그곳에 있었다.

유미의 집에 들어가니 유미는 죽어가고 있었다. 
환희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유미를 공격한 것이다. 
그리고 환희는 이어서 미리내도 살해한다.
미리내는 죽기 전 류의 환상?을 본다. 
죽기 직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유미가 아닌 류라는 걸 깨달은 것 같다. 
 
민성기는 의심병으로 사람인 류를 살해한 혐의, 
환희는 유미와 미리내를 살해한 혐의로 잡혀 들어간다. 
 
그리고 이야기는 유미를 잃은 현수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 평화로운 삶을 살면서 
천사가 없는 다른 세계가 어딘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가 현수에 의해 써졌다는 건가? 갑자기?)
 

소감

 
-좋았던 점
 
이야기의 메인 주인공이 딱 있지는 않다
각 챕터마다 주요 인물인 유미, 미리내, 환희, 민성기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서술된다
인물들이 각자의 삶을 살지만 조금씩 관계가 다 얽힌다는 게 흥미로웠다
 
<나의 천사>는 짝사랑 투성이 소설이다.
인물들은 저마다 사랑을 품지만, 대개 양방향이 되지 못한다.
현수는 유미를, 유미는 이오를, 미리내는 유미를, 환희는 미리내를, 류는 미리내를 사랑한다. 
그리고 소설 속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천사를 (짝) 사랑한다. 
천사는 표면상으로는 주인을 사랑하나, 기계이기 때문에 천사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짝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결코 사랑을 갖지 못하는 인물들이 얼마나 애달픈지, 어찌나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지...
익숙한 짝사랑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쉬웠던 점
 
윤조와 남자의 이야기(3부 챕터 1)는 다른 인물들과 큰 관련이 없다
오징어 게임이 게임 주최 측의 직원들, 그 뒷면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처럼 <나의 천사>도 천사를 제작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천사가 있는 세계에서 유일하다시피 천사에게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이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는 '미'를 소재로 한 소설에서 충분히 나올 거라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라 아쉬웠다.
<나의 천사>의 이야기들이 다 참신해서 더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용 자체가 완결성이 있어 한 편의 단편소설로 따로 떼어놔도 손색없을 만큼 훌륭하다
 
초반부가 좀 지루한 편이다
유미, 미리내, 환희 삼총사의 자비천사 찾기 이야기가 나오는데
세계관을 아직 완전히 파악을 못한 상태라서 그런지
상황이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그래서 자비천사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이러면서 읽었다 
그리고 나는 어린 인물들이 나오면 몰입을 못하는 편이라 읽다가 그냥 하차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그랬으면 후회할뻔했다
 
초반부(3부 1 챕터) 견디고 나서부터 슬슬 재미있어 지다가 
3부 3 챕터에서 환희랑 미리내 나오면서 확 재미있어진다
여기서 이 소설과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내 인생 소설이 될 것을 직감하며 속도 내서 쭉 읽었다 
 
초반부가 지루하면 사람들이 읽다가 하차를 많이 하니
그 부분에서는 좀 아쉽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도 후반부 읽다 보면 꼭 있어야 할 기초석 같은 부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슈타인즈게이트>처럼
 
결말이 너무 아쉽다. 
왜 다 죽는 거야. <은밀하게 위대하게>야 뭐야. 엉엉.
유미 이제 이오 찾아서 해피라이프 즐기려고 하는데!
미리내는 유미 안 죽은 거 이제야 알았는데!
미리내가 사실 자기가 류 사랑했다는 거 깨달았는데! (류가 이걸 알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ㅠㅠ)
민성기는 왜 류 죽이는데, 류가 뭔 잘못이 있다고!
환희 이 지독한 거짓말쟁이 ㅂㄷㅂㄷ
갑자기 마지막에 등장해서 파국으로 만드네 
 
메인 인물들이 줄줄이 죽어버리는 것도 슬펐지만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던 환희가 마지막을 장식? 한다는 점에서 좀 당황스러웠다. 
환희야 그렇게까지 강한 질투를 느꼈니...

3부 중간까지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결말이 도대체 어떻게 날지 예상을 못하겠다고 적어놨었는데, 이런 결말일 줄이야
환희 등장하고부터 읽는데 멘탈이 나갔었다
그냥 류가 생방에서 깜짝 폭로하고 선우랑 관용사 나락 가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인상적인 문장 (발췌)

머지않은 미래에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면 그건 무력이 아닌 사랑 때문일 거다. 그때의 로봇은 감정이 없는 양철 깡통이 아니라 부드러운 살과 피부, 영원히 늙지 않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을 것이고, 인간의 복종은 자발적인 것일 테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때의 기계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가 아닌 '뛰어나게 아름다운 존재'일 것이라는 발상이 신선하다. 


 

"설마요. 그리고 전 지금이 좋아요. 혼자 나올 생각은 없어요."
"그런 건 자기가 선택하는 게 아냐. 사람들이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거지."

 

 

이름을 지어 주세요. 저는 당신의 천사랍니다. 그건 사람들의 바람이었다. 아름다움을 갖는 거. 아름다움이 자신을 사랑하는 거. 그리고 천사는 사람들의 바람을 원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니까.

 

하지만 물방울 하나가 표면장력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말 한마디가 너를 넘치게 할 수 있다면,

 

천사는 아내가 아니었어요. 흉내를 낼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속임수죠. 안 그런가요? 그것도 인간을 속여 지옥불로 떨어뜨리려는 아주 끔찍한 속임수요, 천사라는 이름 자체가 기만입니다. 그것들은 악마예요.

 

 

눈앞에 하나의 얼굴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천사. 영원한 사랑. 하나뿐인 보석. 미의 결정체. 마음의 친구. 유혹하는 악마. 섹스봇.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지옥의 골짜기. 기계 인간. 장난감. 대체품. 권리 없는 도구. 찌꺼기. 

 

 

기숙사 앞의 니케상은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고, 장미를 심으면 장미가 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천사를, 모나리자를, 니케상을, 장미를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름다움은, 천사와 모나리자와 니케상과 장미가 아닌 그게 불러일으키는 마음의 변화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요동치는 물줄기를, 변하는 내 마음을 아름다움이라고 부르는 거다.

 

 

팩토리에 면접을 본 날, 아름다움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공통 질문에 윤조는 그때를 떠올렸다. 갖진 못해도 볼 수는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물을 맞고 꺅꺅대던 여자애들 대부분이 빵처럼 향긋한 아기를 낳고 그 뜨끈뜨끈한 것을 옆구리에 꼭 끼고 산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독신 생활은 역시 그냥 드문 일이었다.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이 느끼는 천사라는 단어는 파인애플이란 단어를 들으면 반짝이는 노란 보석을 떠올리는 18세기 유럽 사람들과 병자와 어린애가 식판에 받아먹는 희멀건한 통조림을 생각하는 현대인 정도로 달라졌다.



추천 이유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하려는, 인간의 시도 자체가 모순
 
이희주의 소설은 '아름다움'에 대한 걸 다룬다.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갖지 못해 슬퍼하고, 그 슬픔이 광기가 되어 집착한다
그런데 그 끝은 항상 파국이다
결국 가질 수 없는 걸 가지려고 하는 것 자체가 파국을 가져온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거 아닐까
알려주기보다는, 사실이 그렇다고 말하는 듯하다. 
(간절히 원하지만 결국 안된다는 걸 알잖아? 그 끝은 파멸이라는 걸)
 
그 모습은 연예인을 너무나 사랑하고 욕망해서 
연예인의 집을 침투하고,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사생의 모습 같기도 하고
인간이 감히 신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욕심으로 끝도 없이 높게 탑을 쌓다 무너지고
인간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같게 된 바벨탑 이야기 같기도 하다
 
마치 아이돌팬이 아이돌과 결혼하고 싶다고 꿈꾸는 듯한...
(현실에서 아주 드물게 이루어진 경우도 있지만)
안다고 안다고! 흑흑
 
이희주의 <최애의 아이>가 젊은 작가 수상집에 실려 있는 것을 보고 의외라 생각했었다
아이돌을 주제로 하는 글에 심사위원이 높은 평을 주지 않았을 거란 개인적인 편협한 생각 때문에
아이돌보다는 미추(美醜)와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룬다는 걸 높게 평가하는 듯하다 (뇌피셜)
 


-이런 분에게 추천
 
이희주 소설은
한 번이라도 연예인을 좋아해 본 사람, 특히 아이돌을 좋아해본 사람에게 추천한다
그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결코 인간대 인간으로 닿을 수 없음에 절망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희주의 글이 더 공감하면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광기 어린 글, 인물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한다 
최근 들어 읽은 글 중에는 광기 최고봉이다 
 
아름다움에 대해 묘사하는 이희주의 표현이 상당히 훌륭하다
어떻게 이런 세세한 것까지 아름다움을 기록할 수 있는지 놀라울 지경
문자로 아름다움을 조각하는 장인 같다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작가인 듯
이러다 작가를 덕질하겠네
대학교 전공 과제로 한 작가에 대해 조사하는 리포트?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이희주 작가를 알았더라면, 아마 이희주 작가로 논문 썼을 듯
 
- 이희주 작가 책 읽는 순서

 

최애의 아이 -> 환상통 -> 성소년 -> 나의 천사 순으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성소년을 읽고 나서 환상통을 읽었는데 
성소년이 너무 자극적인 맛이라 그런지 환상통 읽을 때  좀 아쉬웠다 
아직 <마유미>와 <사랑의 세계>는 읽지 못했는데, 그것도 읽고 나서 
읽는 순 업데이트 해보겠다 
 
-자극적인 순

 

성소년 > 최애의 아이 > 나의 천사 >>> 환상통
 
여담이지만, 이희주 작가 소설을 보면 루즌아가 생각난다.
광기 어린 주인공, 그리고 여성의 추한 속내와 욕망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총평

이희주, 나의 천사 (출처: 교보문고)

한줄평:

천사를 향한 동경은 언제나 추락을 예비한다.

손에 닿지 않는 빛을 붙잡으려다 인물들은 끝내 파멸에 이르고,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결국 우리를 갉아먹는 불가능의 형상이란 게 명징해진다. 

 


별점: 4개 반
파국 엔딩만 아니었다면 내 기준 별 5개였다
이희주 소설의 인물들은 마지막즈음엔 거의 다 파멸하는데
나는 왜 이 인물들이 항상 행복해지길 기대하는 걸까
소설에서만큼이라도 그들이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소유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후유증 쎈 장편 소설...
여운이 가라앉을 즈음에 <나의 천사> 필사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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