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주 작가 팬인 나로서는 이희주 작가 소설 모음집이 나온다는 건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구매했다.
표지

표지가 뭐랄까, 키치하다. 팝마트에 있는 볼살이 통통한 귀여운 피규어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냥 내가 팝마트를 좋아해서 그런듯)
귀걸이 끝에 달린 구슬? 은 (피) 눈물처럼 보이기도...
이희주의 작품 전반에 나오는 여자 인물들의 순애적이고, 열정적이고, 지독하게 외로운 모습이 잘 표현된 것 같은 일러스트다.
표지그림: RASUKU
@i_rasuku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인 듯하다.
출판사: 문학동네

작품집이다 보니 이미 내가 읽은 작품도 있었다.
코멘터리북이 포함되어 있어 행복했다. 작가의 문답과, 작품들의 번외 편?를 볼 수 있다.
목차
- 0302♡
- 최애의 아이
- 마유미
- 해변지도로부터의 탈출
-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 천사와 황새
- 사과와 링고
-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후기 (스포 주의)
마유미는 이전에 한번 후기를 포스팅한 적 있으니 제외하고 나머지 소설들을 리뷰해 보겠다.
2025.09.02 - [서평] - 이희주, <마유미> 리뷰: "아름다운 버추얼 휴먼을 향한 엇갈린 갈망" (줄거리, 등장인물, 후기)
1. 0302♡
청소년물?이랄까
어느 날 유리와 희주는 횡단보도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천사를 만난다.
말미에 사실 희주는 천사를 만난 뒤 여자에서 남자로 성별이 바뀌었다는 게 밝혀진다. 흥미로웠다.
2. 최애의 아이
이희주 작가의 소설에 빠지게 된 계기
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최애인 아이돌 '유리'의 정자를 구매해 임신하여 아이를 낳는 내용이다.
2025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보고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지?' 하고 충격을 받았는데(좋은 의미로) 여운이 가시질 않아 작가의 모든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3. 마유미 (패스)
버추얼 휴먼, 스트리머가 등장하는 소설
4. 해변 지도로부터의 탈출
내용이 잘 파악이 안 됐던 소설이었다. 나중에 해설을 보고 좀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5.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예쁘지 않은 어머니. 그리고 외탁인 '나'
주인공의 정체가 헷갈리게 해 두어서 나중에 밝혀졌을 때 오는 재미가 상당하다.
한량 남편과 다 참고 사는 아내라는 고전적인 소재이지만, '미'에 주목하여 이야기가 굴러가기에 뻔하지 않았다.
이희주 작가의 소설에선
외모 상승이 불가한다. 설사 아주 아름다운 인간과 박색의 인간이 결혼하더라도 아름다움이 대물림되지 않고, 꼭 박색을 닮는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모두 절망스러워한다.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마치 신분 상승을 위해 부자와 결혼했으나
부 대신 가난을 물려받는 것 같다.
그토록 원하는 미(美)를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임을 단언하는 듯하다. 심지어 본인이 아닌 자식이더라도
아무리 바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체념하는 듯하다. 백일몽에서 깨라고 하는 것 같기도.
6. 천사와 황새
<나의 천사>에서 동명의 연극(천사와 황새)이 등장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연극의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주는 줄 알고 설레하면서 봤는데, 아마 그 연극 내용은 아닌 듯했다.
하늘에 천사 얼굴 인면 부유체가 떠다니고
출산율이 하락하여,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남자도 임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7. 사과와 링고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받은 소설. 궁금했었는데 이 책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돈을 헤프게 쓰고, 가족에게 빌붙는 철딱서니 없는 여동생과 K장녀가 나온다.
동생에게 순순히 당하고만 사는 것 같아 속이 상했는데 주인공도 한방을 날린다.
문장도 좋고, 무엇보다 재밌다. 특히 주인공의 속마음이.
8.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희주의 첫 작품 <환상통>이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아이돌 유리를 좋아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쏟는다. 한 명은 만화로, 한명은 사진으로
(유리라는 이름 너무 예쁜 것 같다, 남자 이름으로)
인상적인 문장 발췌
어떤 사람의 마음은 씨앗 없이도 혼자 싹을 틔웠다. 물을 주지 않아도 자랐다.
그 가시 돋친 덩굴이 유리의 발목을 옥죄었다. (0302♡, p.29)
먼발치에서라도 좋다. 아니, 사는 동네라도 알고 싶다. 역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지나가는 남자 모두에게 그의 그림자를 덧씌우다가 돌아오면 되니까. (해변 지도로부터의 탈출, p.199)
그냥 눈에 밟혔을 뿐이에요. 보통은 다 짝으로 다니니까 아무래도 말을 걸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여기까지 혼자 오는 사람들은, 뭐랄까," 남자가 눈치를 살피며 덧붙였다. "외로운 사람이 많거든요. 그래서 문을 쉽게 열어줘요. 방이 남을 확률도 높고." (해변 지도로부터의 탈출, p.205)
나는 그 말뜻을 정우를 만나고 나서 깨달았다. 음식을 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기뻐하는 얼굴을 뜯어먹고 사는 거다.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p.235)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에디는 깨닫는다. 그가 두려워한 건 종말이 아니라 삶이라는 걸. 에디의 펄덕이는 동맥 안쪽에선 청춘의 코르크로는 막아지지 않는 불안이 솟구치고 있었고, 그래서 에디는 이 여행을 기꺼워했던 것이다. 다시 돌아갈 필요 없는 여행이니까. (사과와 링고, p.293~294)
인생은 기름을 바른 미끄럼틀이다. 올라가기는 어려워도 내려가기는 쉽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금방 미끄러지고 어느 순간에는 그 추락을 은밀히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과와 링고, p.297)
조금 더 나가면 큰 잔에 1500원 하는 테이크아웃 전문점이 널렸는데. 언제 연민했느냐는 듯 울컷 화가 치솟았다. 너는 그 소비 습관이 문제라고. 돈 버는 니 언니는 밥 대신 빵 쪼가리 하나 시켜서 물이랑 넘기는데 너는 6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신 것도 모자라서 그걸 또 테이크아웃을 한다고? (사과와 링고, p.308)
이걸 해피로 끝내, 세드로 끝내? 읽는 작업과 쓰는 작업은 달라서 읽을 땐 무조건 행복한 게 좋지만
쓸 땐 다 죽이고 싶었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p.351)
<크리미널 러브> 개인적인 탑 3를 꼽자면
1. 사과와 링고
그냥 잘 썼다는 생각이 절로 듦.
2. 최애의 아이
대체불가한 강렬한 인상
3. 해변 지도로부터의 탈출
구조가 독특하다.
이 책의 제목 <크리미(널) 러브>가 이희주 작품을 잘 설명해 주는 제목이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인간을 향한 그녀(들)의 사랑은 아주 '크리미널' 하지만 그들의 순애는 아주 '크리미'하다.
각 소설에서 '널(너)'의 대상이 누구인지 상기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코멘터리북에서 작가는
여자는 무섭고, 남자는 '바보'같다고 했는데
남자에 대한 워딩이 예상 밖이라 재밌었다. (혹시 유리도 바보 같다고 생각하시는지?)
한줄평

그녀의 내면은 순애로 크리미하고, 외면은 욕망으로 크리미널하다.
별점: ✭4.5
이희주의 다음 작품도 기다려진다. (더 줘...... 나 당신만큼 재밌게 쓰는 사람 못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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