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된 이유
<소설가의 일>은 어머니의 책장에 늘 꽂혀 있었던 책이다.
김연수 작가가 유명하다는 건 알았지만 왠지 손이 잘 안 가서 안 읽고 있다가
이번 추석 연휴때 본가에 있으면서 너무 심심해서 집어 들게 되었다

이렇게 인덱스를 많이 붙이며 책을 읽는 게 오랜만이었다
좋은 문장이 많아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요즘 소설이 잘 안 써지고 퇴고조차도 안 하는 시기라서
이 책을 읽는 게 도움이 됐다.
작법서는 아니지만 소설은 이런 거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써야 함을 알 수 있었던 책
김연수 작가의 위트가 녹아있어 책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인상적인 문장
소설가에게 재능이란 인사기계나 기도기계 같은 것, 그러니까 마치 나 대신에 소설을 써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소설기계 같은 것이다. (중략) 재능이라는 소설기계는 소설을 만들지 않는다. 소설기계 역시 소설가의 죄책감이나 꺼림칙함을 덜어주기 위해서 고안된 기계다. 소설을 쓰지 않기 위한 방법 중에서 재능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도 죄책감이 없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p.23)
자기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 투쟁할 때마다 이야기는 발생한다. 더 많은 걸, 더 대단한 걸 원하면 더 엄청난 방해물을 만날 것이고, 생고생(하는 이야기)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바로 그게 내가 쓰고 싶고 또 읽고 싶은 이야기다. (p.41)
그러니 이 생고생은 피할 수 없는,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생고생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사랑이 없다면 피할 수 있었던 그 많은 생고생들이 이를 증명한다. (p.46)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늘 고생을 자처하게 된다
이 모든 생고생이 내게 없는 것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나의 장점, 내가 사랑하는 것들 때문에 생긴다는 걸 아는 순간, 구멍에 불과했던 단순한 욕망은 아름다운 고리의 모양을 지닌 복잡한 동기가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 인생을 이끌 때, 이야기는 정교해지고 깊어진다. (p.47)
그러니까 모두들 안 된다고 말하고, 또 자신부터가 여러번 실패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뭐라도 해보겠다고 나설 때 비롯한다. 용기는 동사와 결합할 때만 유효하다. 제아무리 사소하다고 해도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건 용기가 될 수 없다. (p.53)
뼈 때리는 문장.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건 용기가 될 수 없다...(메모)
이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는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금 초고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소설가에게 필요한 말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자는 것이다. (p.54)
주인공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이야기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p.69)
소설가에게는 두 개의 상자가 있다. 각각 '왜?'와 '어떻게?'라는 의문사가 들어 있는 상자들이다. (p.76)
누누이 말했다시피 소설을 쓰는 대부분의 시간은, 그러니가 내 경험으로 창작의 대략 팔십 퍼센트는, '아, 잘 못 썼구나'라는 걸 깨닫는 시간이다. (p.88)
김연수도 '아, 잘못 썼구나'를 깨달으며 쓴다니 위안이 된다
시드 필드 같은 시나리오 작가는 모든 영화는 시작하고 삼십분이 지날 무렵에 첫번째 플롯 포인트를 지난다고 말한다. (중략) 이 지점을 지나면 이야기의 방향이 크게 바뀌면서 주인공은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특히 첫번째 플롯 포인트를 가리켜 '돌아갈 수 없는 다리'. 혹은 '불타는 다리'라고도 부른다. (p.91)
"작가에게 중요한 건 오직 '쓴다'는 동사일 뿐입니다. '잘 쓴다'도 '못 쓴다'도 결국에는 같은 동사일뿐입니다. 잘 못 쓴다고 하더라도 쓰는 한은 그는 소설가입니다." (p.114)
한순간의 빛을 말하자면, 시종일관 어둠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점. (p.145)
좌절과 절망이 소설에서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이 감정은 이렇게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p.151)
자신이 소설을 쓴 것인지 그냥 생각만 한 것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심한 내용일지라도 글자수를 헤아릴 수 있다면 소설을 쓴 것이고, 제아무리 멋진 이야기라도 헤아릴 글자가 없다면 소설을 쓴 게 아니다. (p.199)
그러니 제발 쓰자, 생각만 하지 말고(나 자신에게 하는 말)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p.217)
소설은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표현할 때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하루에 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 세 시간동안 최대한 느리게, 거의 쓰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느리게 글을 쓴다. (중략)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글쓰기지만, 그럼에도 하루 세 시간을 소설에 할애하면 얼마간 글을 쓰게 된다. 5매 정도라면 최고다. 하지만 한 줄도 괜찮고, 아예 쓴 게 하나도 없어도 상관없다. 세 시간이 지나면 읽고 쓰던 걸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외의 시간에는 소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게 좋겠다. (중략) 글을 얼마큼 많이 썼느냐가 아니라 소설을 생각하며 세 시간을 보냈느냐 아니냐로 글쓰기를 판단하니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쓰는 사람이 됐다. 그렇게 매일 소설을 쓰게 되면 가장 느리게 쓸 때, 가장 많은 글을, 그것도 가장 문학적으로 쓸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p.232~233)
한 줄 평

작법서는 아니지만, ‘쓴다’는 행위를 실천하게 만드는 책
읽으면서 그동안 쓰지 않고 생각만 했던 시간을 반성하게 됐다.
소설 퇴고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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