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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해연 소설 <홍학의 자리> 리뷰 "내 어린 애인을 누가 죽였을까?" (스포 0)

by 청운0622 2025. 7. 31.


인상 깊게 읽었던 <홍학의 자리> 
글쓰기 동아리 같이 하는 분이 재미있다고 해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구매해서 읽어봤다. 
 
-책 표지


처음에 표지랑 제목 보고 '뭐지?' 했다 
우선 제목이 그렇게 호기심을 일으키지 않았고,
표지도 홍학이랑 관련이 없어 보였기 때문.

제목 미스 아닌가 하며 책을 펼쳤지만,
결말까지 알고 난 후 아주 적절한 제목과 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에 충실한 제목과 표지다. 굿~)
 

북커버를 벗기면 빨간 깃털이 보인다


표지 디자인: 디자인 소요의 이경란 @design_soyo

출판사: 엘렉시르 
문학동네 출판그룹의 장르소설 전문 브랜드이다.
*장르소설이란 판타지, 로맨스, SF, 무협 등의 소설이다.

줄거리 

 
시골 학교의 교사인 준후는 학생 다현과 원조교제를 하고 있다. 야심한 밤에 교실에서 준후와 다현은 관계를 한다. 이후 경비원의 기척이 들려 준후는 다현을 교실에 남겨두고 나간다.
경비원에게 붙들려 야식까지 먹은 뒤, 준후는 다현에게 연락을 했지만 어쩐지 받지 않는다. 이상하다 느낀 준후가 교실로 돌아가보니 다현이 목을 맨 채 죽어 있었다. 알 수 없는 상처들과 함께.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 
 
형사가 학교에 찾아와 사건을 조사한다. 준후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죽은 다현을 자신이 호수에 유기했기 때문. 
형사는 다현의 주변인물들을 살핀다. 평범한 학생 같아 보였던 다현은 사연이 많았는데...
다현의 아버지가 사기를 치고 잠적해, 그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다현에게까지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형사와 준후가 사건을 파해치며 점점 진상이 밝혀진다. 
 

등장인물

 
김준후
은파고등학교의 선생님.
아내와 관계가 좋지 않다.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 
교제하고 있는 다현이 유일한 숨통이지만, 다현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채다현
은파고등학교의 학생. 
준후와 교제하고 있다. 아버지는 사기를 치고 잠적하고, 어머니는 감옥에서 죽었다. 친구가 없고, 유일하게 의지할 어른인 준후에게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황권중(경비원)
은파고등학교의 경비원. 
경비일을 하는 도중 몰래 술을 마시기도 한다. 다현이 죽은 날, 학교에 있던 사람으로 사건에 연루된다.
 
강치수
형사. 
다현의 사건을 진지한 자세로 조사한다. 
 
정은성 
다현의 동급생. 모범생이다. 
어릴 때는 다현과 친했지만, 다현의 아버지 사기로 자신의 아버지가 죽자 다현을 미워하게 된다. 
 
조미란
은파고등학교의 선생님. 은성의 어머니다. 
다현이 죽은 뒤 범인으로 의심받는다. 
 
영주 
준후의 아내.
완벽주의적 성격. 준후와 관계가 좋지 않음에도 가정을 유지하고자 한다. 준후는 영주를 다현을 죽인 유력한 용의자라고 생각한다. 
 

인상 깊은 부분 발췌

 

형사 일을 한 이래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뜻대로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사건 현장이나 초동수사 내용으로 봤을 때 조속한 범인 검거를 예상했음에도 결국 장기 미제 사건으로 끝나버리는 일도 있었고, 심사숙고하여 파악한 범인의 도주 예상 경로가 틀려 며칠이나 차 속에서 잠복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많았다.
(p.181)

 
침착하고 신중한 성격의 강치수
 

생각이 거기에 이른 준후는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차가 속력을 높이면서 타인의 평온한 일상들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p.227)

 
일상에서 벗어나게 된 준후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난 당신을 잘 알아요. "
영주가 준후를 따라 벌떡 일어섰다. 준후는 말끄러미 그녀를 보았다. 다현도 그랬다. 선생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안다고 말했다. 왜 '안다는 것'에 그렇게들 집착하는 걸까. 자신을 가장 잘 안다던 다현은 알까? 다현의 죽음에 자신이 그렇게 슬프지 않다는 것을. 
(p.266)

 
준후 쓰레기...

조미란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밤샘 조사를 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분간 그녀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준후는 쩝 입맛을 다셨다. 차라리 다현을 죽인 것이 영주였다면 좋았을 것을. 
다현이 죽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준후는 조금 놀랐다.
(p.269)

 
준후 쓰레기... 2
준후는 사이코패스인가? 다현은 준후가 이렇게 냉혹한 인간이라는 걸 알까 
 

영주는 이혼을 거부하면서 교사로서의 명예를 협박으로 사용했다. 영주가 모르는 게 있다. 준후는 교사로서의 명예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본인의 명예가 중요했다. 아내와 자식을 두고 학생과 그런 짓을 한다는, 비난과 환멸의 시선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그런 걸 견딜 바에야 버리는 편이 나았다. 
(p.296)

 
교사로서의 명예에 준후가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게 의외였다. 
 

후기(스포 O)

 
-한국 미스터리 사상 전무후무한 '반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다들 멈칫했을 그 문장. 
불과 몇 페이지 남지 않은 시점에 독자를 큰 혼란에 빠트린다. 
 

"가능합니다. 남학생이니까요." (p.323)

 
'알유 기만 미?'가 절로 나오는 부분이다. 
허겁지겁 앞부분을 찾아보게 된다. 
내가 뭔가 캐치를 못한 건가? 왜 당연히 여학생일 거라 생각한 거지?
남학생이라는 언급을 못 보고 지나쳤나? 
 
그럴 리가 없다. 앞부분을 확인했지만 다현을 남자로 묘사한 장면은 없었다.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머리칼과 잘록한 허리, 밤을 새워 지분대던 가슴과 길쭉한 다리,
사랑을 나눌 때면 천장을 향해 만족스러운 듯 뻗던 희고 긴 손가락이
기억과 함께 호수 바닥으로 사라졌다.
(p.7)

이 첫대목을 보고 어떻게 다현을 남자로 상상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물론 남자도 잘록한 허리? 희고 긴 손가락을 가질 수 있지만...
 
 

-나쁜 짓 하자.
다현이다. 글자 속에서 자현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p.15)


제일 납득이 안 됐던 부분. 남고생에서 '나쁜 짓 하자.'라는 워딩이 나온다고?? 
난 분명 여학생의 말로 받아들였는데 (혼란)
언제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 남자일 수도 있지, 남자라도 이렇게 묘사할 수 있지. 내가 고정관념으로 당연히 
유부남 선생의 불륜 상대는 여학생이라 생각해서 그런 걸 거야.'
'아니! 남자로 생각할 여지가 없었는데? 기만이야! 알유 기만 미...'
 
책 읽은 지 한참 되었는데도 계속 이 두 가지 생각을 반복하고 있다. 그만큼 충격이었다는 뜻
책을 읽으면서 그렸던 흰 피부의 여학생 이미지는 와장창 깨져버렸다. 
 
개인적으로 굳이 불륜 상대를 남자로 설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신선하고 재밌는 소설인데  왜 그랬을까 생각이 든다. 
뭔가 충격을 더 주고 싶었나? 독자의 고정관념을 깨고자 하는 목적이었나?? 
 
남자인 걸 암시? 하는 포인트가 있었다면 
 
은성이 다현을 학교에서 폭행한 일이 있었는데
아무리 원한이 깊다 해도 보통 남학생이 여학생을 강하게 폭행했으면 놀랄 법도 한데 주변인들이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걸 보고 뭐지? 싶긴 했다. 

그래도 은성이 다현을 미워할 이유가 충분하다 생각해서 주변인들도 은성이 때릴만했다 생각하고 쉽게 넘어가는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 남학생들끼리의 싸움이었다니...(뒷목)
 
-결말 
 
다현이 죽은 게 누가 살해한 게 아니라 자살인 점도 
소설적으로 좀 아쉽긴 했다. 
 
뭔가 범인이 있을 것처럼 깔아놓고 사실은 다현이 외로움으로 죽었다. 
이렇게 끝나는 게 허무했다. 
차라리 은성이 죽였다면 납득이 갔을 듯. 
 
-인물
 
준후는 쓰레기다. 
명예를 중시하다는 사람이라고 여러 번 나오는 데 
그게 원조교제로 깎일 명예인 줄 알았는데, 동성애로 깎일 명예인 줄은 몰랐다. 

다현은 순수하게 준후를 좋아하고 의지하는데
준후는 다현의 마음을 다 알면서도 잠깐 노는 상대로만 생각하는 게...(할말하않)
 
소설 초반부에는 그래도 준후에게 약간의 연민을 가졌는데 (어쨌든 애인이 죽었으니)
준후가 다현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에서 연민이 사라졌다. 
 
보통 악인이어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류의 서사를 만들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등 설정이 있는데
준후는 100% 악인으로 설정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읽다 보면 준후를 더 싫어하게 됨
(왜 그러냐 준후... 인성 왜 그래)
 

추천 이유

 
결말의 반전 때문에 뒷골 당기긴 했지만 그래도 추천하는 이유는
우선 재밌다. 
술술 잘 읽혀서 도중에 넷플 안 키고 끝까지 집중해서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준후가 자신이 시체를 유기한 게 아니라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데, 이게 시간에 따라 세밀하게 잘 짜여 있어서 짜치는 거 없이 재밌다. 
 
언급했던 반전 말고도 중간중간 다른 반전들이 있어서 흥미진진하다. 
 
다현이 좋아했던 홍학.
홍학은 새끼를 지키려는 게 강해서 암컷을 밀어내고
더 강한 수컷들끼리 새끼를 지키기도 한다고
다현은 홍학처럼 자신이 준후의 아내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채우길 기대했을 것(애잔하다)
 

베트남에서 본 홍학

이 책을 읽고 홍학에 관심이 생겨
베트남 여행 때 빈원더스에서 본 홍학을 찍어왔다. 
실제로 보니 예상보다 쨍한 형광빛 핑크색이라 놀랐다. 
 

총평

 


한줄평:
다현을 죽인 범인을 찾다, 범인의 존재보다 커다란 반전에 머리가 띵해지는 소설
 
별점: 별 4개 
마지막 반전이 없었다면 별 4개 반은 줬을 것 같다. 

문체도 담백하고 좋으니, 한 번쯤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