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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7

by 청운0622 2025. 5. 30.

3: [49퍼센트의 확신과 51퍼센트의 불확실함]

 

 

? 뭔데? 말해봐.”

 

마음이 점점 옥죄어 왔다. 하고 싶지만, 하기 두려운 말을 꺼내려 온갖 용기를 짜내야 했다.

 

내가 오빠를 좋아해서······이런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오빠는 어때?”

 

나는 차마 그를 볼 자신이 없어서 땅바닥을 보며 말했다.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반호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반호의 표정을 알 수 없는데도 왠지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네가 날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어. 확신은 없었지만.”

 

그 말에 놀라 돌아본 반호는 어쩐지 좀 들떠 보였다. 하지만 금세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연애 생각이 없어. 네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상황이 좀······ 안 좋아서. 지금 하는 것들 말고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나는 팔을 감싸안고 앞서 걷는 반호를 따라 걸었다. 그럼 그는 내게 전혀 마음이 없었다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그럼 그동안의 다정함은, 눈빛은 다 뭐였단 말인가.

 

넌 나한테 소중한 동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호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중한 동생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원한다고 해서 연애까지 할 순 없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걸까? 반호에게 이렇게까지 거절의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묵묵히 반호의 말을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기숙사 아래 편의점 앞이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안돼?”

 

나는 그의 변명 같은 말을 듣다가 물었다.

 

?”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라면, 그게 이유라면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아니다,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반호가 내 말에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자존심이 상해 씩씩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뭐 하나 사줄까?”

 

뒤에서 반호가 물었다. 주의가 어두워서 그런지 편의점이 유달리 빛나고 있었다.

 

아냐, 됐어.”

하나 사줄게, 사주고 싶어서 그래. 들어가자.”

 

나는 뒤를 돌아 반호를 말없이 쳐다보다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몹시 피곤했으므로 박카스 하나를 골랐다. 박카스 한 병을 들고나오면서 이 상황이 너무 자존심 상하고 황당했다. 이 와중에 나한테 왜 이걸 사주는 거지?

 

나는 도서관에 들렀다 갈게. 먼저 들어가.”

 

반호와 같이 기숙사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 나는 말했다.

 

데려다줄게. 그 앞까지만.”

 

반호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랑했던 그 다정함으로. 고백을 거절했으면서, 이런 순간까지 친절을 베푸는 반호가 나는 미웠다.

 

됐어, 혼자 들어가면 돼. 빨리 가.”

 

나는 가지 않으려는 반호의 등을 떠밀었다. 반호는 우리가 함께 내려왔던 오르막길로 향했고 나는 그 반대편으로 걸었다. 반호가 내 뒷모습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고집스럽게 걸었다.

 

*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한참 울다가 나는 기숙사로 돌아왔다. 빨갛게 부은 눈이 들킬까 봐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고개를 푹 숙이며 조심히 들어오긴 했지만, 문제는 기숙사 방이었다.

 

······.”

 

제발 율희가 먼저 자고 있기를. 나는 조심히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역시 기대와 달리 방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언니, 왔어요? 아니, 얼굴이 왜 그래요?!”

 

침대에 앉아 있던 율희가 내가 방문을 열자마자 내 얼굴을 보고 놀라 뛰쳐나왔다.

 

율희야······. 묻지 말고, 가서 자.”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니 얼굴이 이렇게 엉망이 됐는데, 어떻게 안 물어봐요? 왜 그래요? 반호 선배랑 싸웠어요?”

 

율희가 내 손을 잡아 내리고 물었다.

 

율희야 네가 했던 말 기억나?”

 

잠긴 목소리에 율희가 내 팔을 잡고 침대로 데려가다가 멈칫했다.

 

반호 선배가 나 좋아하는 거 같다고.”

 

율희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대였어.”

?”

내가 반호 선배 좋아했어. 그 사람이 날 좋아한 게 아니라.”

언니가 그 선배 좋아한다고요? 아니 그보다 그 선배가 언니를 안 좋아한대요? 그럴 리가······.”

오늘 말했어, 선배한테, 좋아한다고. 근데 자기는 연애할 여유가 없대.”

 

율희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연애할 여유가 없다고요? 뭐 얼마나 바쁘길래? 우리 언니도 바쁜데.”

나만 좋아한 거였어, 나만. 바보같이.”

 

나는 침대에 앉아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럼 그 선배는 언니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랬대요? 진짜 나빴다. 좋아하는 것처럼 잘해줘 놓고 이제 와서 내빼는 거잖아요! 자기는 전혀 그런 맘 아니었다고.”

 

율희가 대신 화내며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모르겠어. 진짜. , 이제 반호 선배 어떻게 보냐.”

그 선배가 보는 눈이 없는 거예요! 언니, 울지 마요.”

 

율희도 같이 눈물을 글썽였다.

 

그냥 다 내가 혼자 좋아한 것처럼 말하더라.”

언니, 내가 보기엔, 반호 선배 거짓말인 것 같은데, 마음 없다는 거. 마음 없는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아니야, 그냥 친한 동생으로밖에 생각 안 하는 것 같아. 아니다. 더는 생각 안 할래. 희망 고문이야.”

 

율희는 뭔가 더 말하려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침울해하는 나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이제 그런 사람 생각하지 마요! 언니 좋아할 남자는 많을 테니까.”

고마워.”

이제 불 끌게요. 푹 자요 언니. 자고 나면 나아질지도 몰라요.”

 

율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의 불을 껐다. 나는 침대에 옆으로 누웠다. 많이 울어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눈물이 또 흘러나와 베개를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