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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6

by 청운0622 2025. 5. 30.

······30분 뒤에?”

 

빨리 대답이라도 해야 이 민망한 자세에서 벗어나겠다 싶어 나는 대충 대답했다.

 

그래.”

 

반호는 대답을 듣고는 쓱 몸을 일으켜 기숙사 식당 바깥으로 나갔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려는데 율희가 옆에서 음흉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어 흠칫 놀랐다.

 

? ?”

언니 바람 쐬러 간다는 게 저 선배 본다는 거였어요? 뭐야,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니, . 쉿쉿.”

둘이 좋은 시간 보내세요~”

 

율희가 삐진척하며 식판을 들고 새침하게 일어섰다. 나도 허둥지둥 일어나서 앞서가는 율희를 쫓았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이러다 나 몰래 둘이 사귀겠어. 아니 이미 사귀고 있는 거 아니죠?”

무슨 소리야. 그냥 얘기할 게 있어서······.”

 

율희가 확 뒤 돌아섰다.

 

언니, 혹시 사귀면 나한테 꼭 말해줘야 해요! 알겠죠? 내가 언니 최측근인데 나한테 숨기고 그러면 나 섭섭해요?”

그래, 그래.”

 

나는 율희의 등을 떠밀었다. 어차피 다들 우리 대화에 관심 없는 것 같아보였지만, 반호가 인기가 많다 보니 혹시라도 말이 돌까봐 나는 신경이 쓰였다.

 

? ‘그래라고 했어요? 부정을 안 하네 이 언니?”

아니, 야 좀 조용히 말해. 율희야, 식판부터 정리해. ? 빨리 방에 들어가자.”

 

율희는 눈에 띄게 당황하는 내가 웃긴지 계속 으흥? 요것 봐라?’하는 눈빛으로 놀려댔다.

 

*

 

나는 가벼운 운동복차림으로 밖에 나왔다. 날씨는 많이 따듯해졌지만, 봄이라서 밤에 반팔 반바지만 입고 있으니 추웠다. 어느새 많이 어두워져서 가로등 몇 개만 켜져 있었다. 밤에만 나는 특유의 향긋한 풀 냄새가 풍겼다. 나는 오르막길 끝자락에서 반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기숙사 밖에 있어]

[오고 있어?]

 

핸드폰을 보며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어깨를 가볍게 톡톡 쳤다. 반호였다.

 

기다렸어?”

아니, 별로.”

너 피곤해?”

“······아니?”

 

뜻밖의 물음에 나는 놀라서 반호를 쳐다봤다. 혹시 내가 식당에서 말한 걸 들은 걸까? 멀어서 안 들릴 줄 알았는데. 반호는 내 대답에 의아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다가 긴 다리를 뻗어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는데 아래에서 남자 한 무리가 시끌시끌하게 올라오는 게 보였다.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걸 보니 아래에 있는 편의점에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 반호야!”

 

그중 한 명이 반호를 불렀다. 아마 반호의 친구들인가 보다. 남자는 옆에 있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주변에 있던 남자들도 나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수군댔다.

 

뭐야 둘이?”

 

반호를 불렀던 남자가 나와 반호를 번갈아 보며 웃으며 장난을 걸어왔다. 나는 반호의 하얀 옆얼굴을 쳐다봤다. 반호는 웃으며 손사래를 치며 내려갈 뿐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를 지나친 후에도 그 남자 무리가 우리를 돌아보며 저들끼리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나와 반호의 관계를 추측하는 얘기겠지. 그걸 보며 오늘은 기필코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이 더 굳어졌다. 묘한 긴장감으로 손에 땀이 났다. 나와 달리 반호는 태연해 보였다.

 

산책 어디 갈 거야?”

 

반호가 고개를 숙이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밑에 공원에 가자. 우리 예전에 갔던 데.”

 

공원에 도착해서 우리는 빙빙 돌며 천천히 걸었다. 혹시 나를 좋아하냐고, 내게 마음이 있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요즘 잘 지내?”

 

기숙사와 동아리로 거의 매일 같이 보면서, 긴장한 탓에 이상한 질문이 튀어 나갔다.

 

요즘에 할 게 너무 많아서, 바빠.”

 

뜻밖에 반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표정이 좀 침울해 보였다.

 

그래? 벽화 동아리는 계속할 거야?”

그거는 계속해야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너도 있으니까.”

나 없으면 안 할 거야?”

? 너 안 할 거야?”

 

반호가 놀라서 말했다.

 

아니, 아니. 계속해야지. 장난으로 물어본 거야.”

너 없으면, 나도 안 할 거야. 우혁이 형도 있지만, 너 말고 내가 거기서 친한 사람도 없고.”

친한 사람이 없어? 아까 보니까 여자애들이랑 말 잘만 하던데?”

에이, 그거는······.”

 

반호가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반호와 공원을 돌며 얘기하다 보니 그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언제 들어가야 해?”

 

도무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어 물었다. 반호와 오랜만에 오래 산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빨리 들어가면 좋긴 하지. 할 게 있어서.”

 

하지만 반호의 무심한 대답에 맥이 탁 풀렸다. 반호가 내게 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49%의 확신과 51%의 불확신, 그동안 나는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 망설였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속이 다 탈 것 같아 반호와 공원을 한 바퀴 더 돈 후 나는 탁 멈춰 섰다.

 

사실 내가 오빠한테 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

 

덩달아 멈춰 선 반호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