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라도 고맙다.”
“언니 요즘 너무 기운 없어 보여서 그렇죠. 기죽지 마요. 우리 동아리 에이스.”
그때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확인해 보니 도형 선배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옆에서 내 휴대폰 화면을 보던 율희가 물었다.
“언니, 도형 선배는 어때요? 그 선배도 괜찮지 않아요?”
“도형 선배는······.”
나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어마어마한 양아치인 거 같아.”
“에?”
나는 어제 머리가 뜯겼던 곳을 문질렀다. 숙취의 고통에 가려져 있고 있었다. 내가 어제 어떤 성질 더러운 여자에게 머리채를 잡혔다는 사실을.
“엮이면 안 될 것 같아.”
“언니가 도형 선배 마음에 든다하면,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드립치려고 했는데 아쉽네.”
“그래도 반호 오빠가 똥차는 좀······.”
“똥차인지, 벤츠인지 내가 두고 본다 진짜. 우리 언니 또 울리기만 해봐.”
율희가 흥 콧김을 내며 주먹을 쥐었다. 주먹이 너무 앙증맞은 크기이긴 했지만.
“아주 든든하다 율희야. 너는 남친이랑 잘 지내니?”
율희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율희가 꼭 쥐었던 주먹은 보자기가 되고 있었다.
“언니, 내 남친은······ 너무 좋아요. 너무 만족스러워. 착하고, 귀엽고, 멋지고······.”
“오케이, 거기까지.”
나는 검지 손가락을 들며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율희의 말을 뚝 잘랐다. 이건 마치 상대에게 아이돌그룹 최애의 어디가 그렇게 좋냐고 물어 팬의 말문을 트이게 하는 것과 같았다.
“남친이랑 잘 지내면 됐다.”
“언니도 내 남친처럼 좋은 남자 만나요. 나한테 잘해주는 남자가 벤츠예요. 돈 많다고 벤츠······ 그것도 벤츠 맞지만! 반호 선배, 돈 많은 집 자식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냥 솔직하게 말해.”
“흠, 나한테 잘해주는 남자가 베스트라고요!”
“예, 연애 선배님. 부럽습니다.”
내가 율희에게 묵례해보이자 율희가 헛기침을 했다.
“그럼, 나 이제 간다.”
“어디 가요?”
“나쁜 남자랑 엮이러.”
“에? 누구요? 반호 선배? 아님 도형 선배?”
“둘 다.”
“와, 이 언니 인기쟁이네. 내가 연애 조언해 줄 게 아니었네.”
벙찐 율희를 두고 나는 손을 흔들며 나왔다.
10화: [우당탕탕 엠티 시작]
기숙사 앞에 도형 선배가 서 있었다. 죄인마냥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이다. 다짜고짜 연락해 사과하겠다고 해서 오긴 왔는데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반호의 말대로 역시 도형 선배와 안 어울리는 게 답일까. 그전에는 도형 선배, 그냥 좀 웃기고 잘 노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봐 온 모습은 새 발의 피일지도 모른다. 괜히 어울렸다가 어제는 당하지 않아도 될 봉변을 당했지 않나.
“유화.”
주머니에 손을 꽂고 불안한지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던 도형 선배가 내가 다가오자 고개를 들었다. 예쁘장하게 잘생긴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어제는 미안했어.”
“뭐가요?”
“나 때문에 유화 네가 피해 본 거.”
도형 선배가 미안한 눈빛으로 내 머리를 이리저리 살폈다.
“머리는 괜찮아?”
“괜찮아요. 운이 없었나 보죠, 내가.”
나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도형 선배의 얼굴이 하얘졌다.
“하······ 장은수, 성격 더러워서, 진짜. 어쩔까? 네가 원하면 걔 데려올까? 똑같이 머리 잡아 뜯을래? 네 분이 풀린다면 그렇게라도······.”
당장에라도 연락할 기세라 나는 도형 선배를 말렸다.
“됐어요. 그 여자를 또 보고 싶진 않으니까.”
“그렇지? 그럼 내 머리라도 잡아.”
도형 선배가 윤기 나는 갈색 머리통을 불쑥 내 눈앞에 내밀었다. 내 얼굴을 곁눈질하며 얼른 잡아 뜯으라는 도형 선배의 재촉에 나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뭐예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런 거 안 해도 돼요.”
내 웃음소리에 안심했는지 도형 선배가 슬그머니 웃으며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래? 어우, 나는 내 머리카락 다 뽑힐 각오 하고 왔는데. 다행이다.”
“다 뽑아버릴 걸 그랬나?”
“어휴,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니.”
“내 머리카락 다 뽑힐 뻔한 건 괜찮고요?”
도형 선배가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만지려다 손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