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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21

by 청운0622 2025. 6. 1.

  “선배는 그래요?”
  “나는 나한테 관심 있어 하는 여자가 워낙 많아서, 예외고.”

  도형 선배가 특유의 그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재수 없어.” 
  “아니야. 음, 나도 그랬, 던 거, 같아.”
  “말이 끊기는 거 보니까 더 확신이 안 생기는데요?”
  “반호랑 나는 케이스가 다르지. 걔는 나만큼 자기한테 들이대는 여자가 많진 않았으니까.”
  “반호 오빠가?”
  “솔직히 얼굴은 내가 더 낫지 않냐?”

  도형 선배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씩 웃었다. 날티가 묻어있는 잘생긴 얼굴이긴 했지만, 반호와는 다른 느낌의 미남이었다. 

  “······.”
  “와, 대답 안 하는 거 봐? 서운하네.”
  “그런 거 물어보지 마요. 자신감이 너무 넘쳐 선배는.”
  “아무튼 생각해 봐. 난 언제든지 콜이니까. 가짜 남친 행세하는 거. 적어도 난, 반호보다는 네 편이다?”
  “퍽이나 든든하네요.”

  도형 선배가 다 타들어 간 담배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던졌다.

  “그럼, 술 깨기 전에 다시 다른 데 들어가자. 밤은 길잖아?”

*

  도형과 클럽에서 한바탕 논 뒤 나는 먼저 밖으로 나왔다. 도형 선배는 클럽 안에서 친구들과 담배 피운 뒤 나오겠다 했다. 도형 선배는 같이 있자고 했지만,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있기에 뭐 해서 만류하고 나왔다. 

  “하······.”

  새벽 공기가 상쾌했다. 공부, 알바, 동아리 이 세 개만 쳇바퀴처럼 반복적으로 하느라 대학 와서도 제대로 놀지 못했는데 오늘 일탈 한 번 제대로 한 것 같았다. 

  “이제 어디로 가지?”

  기숙사 통금 시간은 지난 지 오래였고, 다시 들어가려고 해도 시간이 좀 남았다. 도형 선배는 아예 밤을 새울 생각인 것 같았지만 나는 더 놀고 싶지 않았다. 클럽 여기저기 다니는 게 재미는 있었지만, 나는 춤도 출 줄 모르고······. 무엇보다 모든 게 낯설어서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다. 아까 목걸이를 던지며 울던 도형 선배의 전여친도 자꾸 생각이 났다.  

  그 여자의 반지가 소리를 내며 굴러갈 때 나는 반호에게 받았던 빨간색 펜이 떠올랐다. 한때는 나를 향한 애정이 담겼을 물건. 하지만, 이제 아무런 가치도 없는, 미련만 가득 묻어있는 물건이었다.

  “야, 너!”

  뒤에 인기척이 들리더니 쇳소리 같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도형 선배의 전여친이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었다. 

  “그래, 너 말이야.”

  내게 다가오는 여자의 화장이 다 번져 있었다. 술에 많이 취했는지 비틀거리면서 걸어왔다. 

  “왜요?”
  “박도형 어디 있어?!”
  “도형 선배는 저기 클럽에······ 아!”
  
  여자가 내 머리채를 잡은 건 순식간이었다. 어이가 없어 빠져나가려는 데 여자의 손아귀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원래 힘이 세지나?

  “왜 이래요?”
  “네가 박도형 꼬셨지? 말해봐, 너 내가 박도형이랑 사귀고 있을 때도 만나고 있었어?”
  “그게 무슨······! 난 그 사람 여친도 아니라고요!”
  “내가 씨발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박도형이 네가 여친이라잖아!”

  여자는 휘청거리며 내 머리카락, 카디건, 가방 뭐든 잡고 늘어졌다. 여자의 친구들은 담배를 피며 여자를 말리지도 않고 클럽 입구에 서서 불구경하듯 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피던 담배를 나한테 던져 내 운동화를 맞고 떨어졌다. 따가운 감각이 들어 운동화를 봤더니 담배빵이 나 있었다. 여자는 마구잡이로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놔! 하, 도형 선배는 왜 안 오는 거야.”
  “네가 뺏어간 거지? 그렇지? 그러니까 박도형이 날 찬 거잖아.”
  “뭔가 오해한 거 같은데, 악! 좀 놓고 말해! 당신 멋대로 생각하지 말고!”

  당겨진 머리카락이 아파서 낑낑거리고 있는데 누가 내 허리를 강하게 잡아채 여자에게서 떨어트려 놓았다. 도형 선배가 왔나 싶어 돌아봤는데, 

  “한유화!!!”
  “······오빠?”

  한 팔로 내 허리를 꽉 잡고 있는 사람은 반호였다. 

 

 

  “나쁜 새끼야. 너 환승했지? 안 그럼 어떻게 한 달 만에 새 여친이 생겨?”

 

  여자가 울며 도형에게 외쳤다.

 

  “, 우리가 사귀면 얼마나 사귀었다고 이 난리를 쳐? 너 집착 존나 심해서 헤어진 거잖아. 너도 잘한 거 없어.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어? , 진짜 없던 정도 다 떨어지겠네.”

  “박도형, 네 더러운 연애사는 알 바 아니고, 난 신고해야겠어. 폭행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