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20

by 청운0622 2025. 5. 31.


  내가 무심하게 대답하자, 도형 선배가 참지 못하고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게 그러니까, 어차피 내가 도형 선배를 좋아하지는 않으니까 상관없다는 말이었는데, 상황상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았다. 남친이 바람둥이라도 상관없는, 사랑에 미친 여자로 말이다. 술에 취해서 그런지 속에서 생각한 대로 말이 나가고 말았다. 

  “미친.”
  
  여자가 삐딱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는 미쳐있어야, 내 여친이지.”
  
  도형 선배가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오빠는 잠깐 자기가 가지고 놀 사람이 필요한 거니까. 야, 너라고 다를 것 같아? 너도 마찬가지야.” 
  “은수야. 뭘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얘는 달라. 너랑 달리 되게 재밌는 친구라.”
  “오빠, 나랑 언제 헤어진 지는 기억나?”
  “······ 한 달 됐나? 아님 2주?”
  “이것 봐. 기억 못 하지. 진짜 실망이다.”
  “이미 헤어졌는데, 그걸 다 기억해야 하나?”

  도형 선배가 술을 마시다 턱짓으로 여자의 목에 걸려 있는 걸 가리켰다. 끈에 반지를 매달아 만든 목걸이였다. 

  “그거 설마 커플링?”
  
  여자가 황급히 목에 걸린 걸 손으로 잡아 숨겼다.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너도 참 웃기는 애네. 클럽 와서 딴 남자랑 놀 거면서 뭐 하러 그걸 가져와? 전남친 못 잊었다고 자랑할 일 있어?”
  “이 나쁜 새끼야······.”

  여자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목걸이를 거칠게 잡아 뜯었다. 

  “너같이 나쁜 새끼랑 사귀었던 내가 병신이지. 꺼져!”

  여자가 목걸이를 도형 선배의 얼굴에 향해 던졌다. 목걸이 줄은 곧장 바닥에 떨어지고 반지는 멀리 날아가 바닥에 튕겨 굴러갔다. 아주 개판이었다.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도 이 소란을 눈치챈 건지 클럽에서 춤추던 사람들 몇몇이 우리를 돌아봤다. 호기심 가득한 눈들이었다. 
  
  “언제는 나쁜 남자가 좋다면서?”

  도형 선배가 씩씩거리는 여자를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이 모든 극적인 상황이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이미 이런 상황 따위 많이 겪어봤다는 듯이. 도형 선배가 그녀를 잠시 차갑게 응시하다가 술을 단숨에 들이켠 후 말했다. 

  “유화야. 오늘은 여기 안 되겠다. 다른데 가자.”

 결국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우리는 클럽 밖으로 나왔다. 나는 노트북이 든 무거운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치듯 내려놨다. 도형 선배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는 도형 선배의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 꺼냈다.

  “왜? 이거 피게?”
  “네.”

  도형 선배가 내 손에 들린 걸 빼앗아 다시 자기 담뱃갑에 넣었다.

  “안돼. 이거 많이 써. 펴도 천천히 늘려가지 왜 이리 급해?”
  “치.”
  
  나는 내 가방을 뒤적여 내 담뱃갑을 꺼냈다. 도형 선배에게 담배를 배운 뒤 종종 피긴 했지만, 그렇게 자주 피지는 않았다. 내가 담배를 입에 물자 도형 선배가 얼굴을 가까이해 불을 붙여주었다. 온화한 빛이 도형 선배의 얼굴에 잠시 번졌다. 아무리 봐도 차가운 기운이라고는 없는 장난기 서린 얼굴이었다. 

  “미안. 전여친이 거기 있을 줄은 몰랐어.”

  도형 선배가 하늘로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런데 예상하던 거 아니었어요? 전여친 있을 줄?”
  “약간은?”
  “그래서 나 데려왔어요? 여친 행세하라고?”
  “그건 아니고······. 뭔 말을 못 하겠네.”
  
  잘 당황하지 않는 도형 선배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내 표정을 살폈다. 혹시 내가 진심으로 화가 났을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화난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그래?”
   
  도형 선배가 담배를 한번 깊게 빨고 난 뒤 말했다. 

  “어때? 괜찮으면 오늘 하루 여친 할래?”
  “왜요? 다른 클럽에 전여친들 더 있어요?”
  “아이, 아니야. 날 뭐로 보고. 이제 아까처럼 당황스러울 일 없을 거야. 다른 클럽도 구경 시켜줄게.”
  
  내가 영 못미더운 눈빛으로 보자 도형 선배가 말했다.

  “대신 내가 너 필요할 때 남친 행세 해줄게. 반호 앞에서. 어때?”
  “그게 무슨 미친 소리예요?”
  “조반호, 너랑 내가 같이 있는 거 보니까 눈에서 거의 불꽃이 튀던데. 잘하면 질투 작전으로 반호가 너한테 넘어올 수도 있잖아.”
  “······됐어요.”
  “생각해 봐. 효과 있을 거라니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요. 어차피 반호 오빠는 뭔 짓을 해도 나 안 좋아할 거예요.”

  나를 좋아할 거 같았으면, 진작에 좋아했겠지, 이제 와서 질투 작전이 먹히겠나. 나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렇게 무수한 신호들이 다 내 착각이었다니. 아직도 그때의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어떻게 단정 지어? 남자는 관심 없던 여자라도 자기 좋아한다고 하면 관심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