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가자마자 도형 선배가 길가에 서서 택시를 잡았다.
“빨리 가자, 저러다 조반호가 나 죽일 것 같으니까.”
도형 선배가 내게 속삭였다.
“선배 차는요?”
“왜? 내 차 타고 싶어?”
“아니, 그냥. 늘 타고 다니다가 안 타길래.”
“우리 오늘 술 마실 거야. 난 대리 부르는 거 별로라.”
“네?”
“원래 클럽 들어가기 전에는 술 좀 부어줘야 해. 취해야 더 재밌거든.”
도형 선배가 택시를 잡아서 나를 먼저 들여보냈다. 그러다 문득 택시 문을 탁 잡고 내게 물었다.
“설마, 술 안 마시는 건 아니지?”
“아뇨, 술, 마셔요.”
“그럼, 다행이고. 나는 또 조반호가 하도 애지중지하기에 술도 한 번 안 마셔본 아기인줄 알았지. 그럼 죄책감들 뻔했잖아. 담배도 내가 알려줬는데.”
도형 선배가 개운하게 웃으며 들어와 내 옆자리에 가볍게 앉았다. 그리고 다리를 꼬고 외쳤다.
“기사님! 홍대 클럽으로 가주세요.”
*
“소주? 맥주?”
도형 선배와 클럽 근처의 술집에 들어왔다.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라, 클럽 오픈 할 때까지 시간이 남았다.
“상관없어요.”
“오케이, 그럼 소맥으로 가자.”
도형 선배가 직원을 불러 술을 시켰다. 그러자 술집에 있던 여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형 선배에게로 꽂히는 게 보였다. 저마다 수군거리며 얼굴을 붉히는 모습들. 다들 클럽에 가려고 하는지 짧은 치마, 몸에 딱 붙는 원피스 차림이었다. 반면에 나는 반바지에 민소매, 그리고 그 위에 걸친 카디건. 게다가 노트북 때문에 가져온 큰 가방까지. 영락없이 공부하다 끌려 나온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그 격차에 좀 민망해져 나는 내 투박한 가방을 구석에 밀어 넣었다.
“오늘 클럽 갈 줄 알았으면, 옷을 좀 잘 입고 올 걸 그랬네요.”
“그러게 누가 준비 안 하고 있으래?”
도형 선배가 어느새 온 술병의 뚜껑을 따면서 말했다.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은 몰랐죠. 누가 택시부터 잡으래요?”
“원인 제공은 네가 했어. 너 데려 갈려니까 조반호가 개빡쳐서 쳐다보는데 어떻게 다시 기숙사로 돌려보내? 그럼, 너 분명 기숙사에서 조반호한테 붙들려 있었을걸? 그럼 나 혼자 쓸쓸하게 클럽 오고.”
도형 선배가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겉보기엔 그냥 신난 (잘생긴) 강아지 같은 모습인데 아까 카페에서는 반호 못지않게 꽤 사나운 모습이라 놀랐었다.
“아니, 근데 둘이 사이좋은 거 아니었어요?”
도형 선배가 술을 잔에 따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사이? 좋은가? 우리가. 오래 알고 지내서 종종 보긴 하는데. 걔는 나 별로 안 좋아해. 나도 뭐, 썩? 반호 반응이 좋아서 내가 많이 들이대긴 하지. 볼일이 많아서 비즈니스로라도 잘 지내야 하기도 하고.”
“오래 알고 지냈어요?”
“응, 걔네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랑 사업적으로 엮인 게 있어서. 그건 그렇고 한 잔 마셔.”
도형 선배가 능숙한 솜씨로 소맥을 말아 내 앞에 놔줬다. 내가 잔을 들자, 도형 선배가 자기 잔을 갖다 댔다.
“짠~!”
시원한 소맥이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넘어갔다. 속이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딴생각하지 말고 미친 듯이 놀자!”
“좋아요.”
탁자에 진동이 울려서 봤더니 내 폰으로 반호가 전화가 오고 있었다. 내가 폰을 들기도 전에 도형 선배가 손을 뻗어 빨간 버튼을 눌러버렸다.
“딴 생각 안 하기로 했잖아. 나한테 집중해야지? 내가 오늘 클럽에서 노는 법 전수해 줄 건데?”
“손이 참 빠르네요.”
“손만 빠를까? 술도 빨리 마셔. 너도 어서 마셔, 취해야 재밌게 놀지. 너 맨정신으로는 못 놀걸?”
“뭐 얼마나 잘 놀려고 이래요?”
나는 벌써 비어버린 도형 선배의 잔을 보며 헛웃음을 짓다가 내 잔에 남아있는 술을 남김없이 마셨다.
“내가 낮에도 미친놈이지만, 밤에는 더 미친놈이거든.”
도형 선배가 킬킬 웃었다. 주변 테이블에 앉은 여자들이 힐긋힐긋 우리 테이블을 쳐다봤다. 지금 내가 같이 앉아 있는데도 이 정도면, 도형 선배만 있을 때는 여자들이 번호 한번, 아니 인스타 아이디라도 알아내려고 안달이겠다 싶었다. 이렇게 여자들을 시선을 끄는 사람이니 밤이 안 재밌을 리가.
“언제는 순수하게 음악 즐기러 클럽 간다면서요?”
“겸사겸사 노는 거지. 음악도 듣고, 사람도 만나고. 좋잖아?”
한참 술을 마시다 꼴아 갈 때쯤 도형 선배가 먼저 비틀비틀 일어섰다. 바글대던 술집에 빈자리가 몇 개 보이는 걸 보니, 벌써 클럽에 들어간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유화야, 가자! 음악 들으러.”
도형 선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클럽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밤거리에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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