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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16

by 청운0622 2025. 5. 31.

 

반호와 점심을 먹고 나와 같이 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향했다. 버스를 타니 빈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반호가 턱짓으로 빈자리를 가리켰다.

 

유화야, 앉아.”

아니야, 오빠는 가방도 있잖아.”

 

내가 안 앉으려 하자, 반호가 내 어깨를 살짝 잡고 눌러 자리에 앉게 했다.

 

괜찮아. 너 앉아.”

 

반호가 버스 손잡이를 잡고 내 자리 앞에 섰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반호의 몸이 내게로 기울었다. 향수를 뿌린 것 같지는 않은데, 반호에게 청결한 향이 났다. 반호의 몸이 내게로 쏠릴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진짜 기숙사 같이 안가도 돼?”

, 오빠 먼저 가 있어. 먼저 리포트 쓰고 있어. 오빠 거 좀 베끼게.”

그래, 그럼 열심히 쓰고 있을게.”

 

농담으로 말한 건데, 반호가 제법 진지하게 답해서 나는 픽 웃었다.

 

*

 

버스에서 내려 반호는 카페로, 나는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 간 김에 나는 옷도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반호는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자꾸 의식이 돼서 신경 쓰였다. 이렇게 커플룩처럼 입고 있다가 동아리 사람들이라도 마주치면 또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안 그래도 반호가 유화를 찼더라혹은 반호가 유화한테 차였다더라하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괜히 말이 돌 건덕지를 만들기 싫었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꺼냈더니 도형 선배한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유화야, 오늘 토요일이야]

[클럽 안 갈 거야? 가자 가자 가자!]

 

, 그러고 보니 오늘이 도형 선배가 클럽 가자던 날이었지. 오늘 리포트 쓰는 거 말고는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한 번도 클럽을 안 가봤다 보니 선뜻 가겠다는 말이 안 나왔다. 나는 뭐라고 답장해야 할지 몰라 우선은 핸드폰을 다시 핸드백 안에 넣었다.

 

*

 

옷을 갈아입고 카페에 도착하니 반호가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걸 모르는 눈치라 나는 반호의 앞에 서서 그의 노트북을 톡 두드렸다. 그제야 반호가 고개를 들었다.

 

유화야, 왔어? 다른 옷 입고 왔네?”

, 리포트는 좀 썼어?”

 

반호는 노트북을 돌려 화면을 보여줬다. 리포트 제목과 오늘 전시에 대한 내용 몇 줄, 그리고 그 끝에 적힌 한 줄.

 

유화는 언제 오지?????’

 

나는 노트북 창에 떠있는 그 한 줄을 손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이게 뭐야? 나 기다렸어?”

너 안 오니까 뭘 쓸지 생각이 안 나잖아. 이래서 같이 해야 한다니까.”

 

반호가 머쓱해하며 노트북 화면을 다시 자기 쪽으로 돌렸다. 나는 반호의 맞은편에 앉아서 내 노트북을 켰다. 이러고 있으니 예전 생각이 났다. 반호가 내게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부풀어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도 못하고 노트북 너머로 그의 얼굴을 훔쳐보던 바보 같았던 지난날. 그런데도 나는 아직 반호의 앞에 앉아 있다. 그 생각을 하니 나는 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옆에 반호가 미리 시켜둔 따듯한 아메리카노가 적당한 온도로 식어가고 있었다. 그걸 한 모금 마시며 반호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 사람은 왜 여전히 내게 다정하게 굴까.

 

유화야, 무슨 생각해?”

? 아니, 리포트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나는 내가 사진 찍었던 작품들 위주로 쓰고 있어. 너도 그렇게 할래?”

, 사진······ 찍었지.”

뭐 찍었어?”

 

내가 휴대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자 반호가 일어나 내 옆에 왔다. 가까워진 거리에 좀 불편했지만, 같이 사진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손가락으로 사진을 하나씩 넘겼다. 그러다 반호가 유심히 봤던 어머니와 아들이 나오는 그림이 나왔다.

 

? 너도 이 그림 마음에 들었어?”

 

반호가 사진을 보고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 오빠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아니 나도 꽤 마음에 들어서 찍었어. 따뜻해 보여서 좋길래.”

 

순간, 본심이 먼저 나와버려서 놀랐다. 나는 꿍얼꿍얼 이유를 덧붙였다. 반호는 다시 자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유화, 너한테 부탁하고 싶었던 게 있는데.”

뭔데?”

곧 어머니 생신이거든, 선물 고르는 거 도와줄 수 있어?”

?”

마음에 드실만한 걸 드리고 싶은데, 사실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친한 여자애는 너뿐이라.”

오빠, 친한 여자애들 많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