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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14

by 청운0622 2025. 5. 31.

클럽이요? 아니요.”

 

도형 선배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아직 한 번도 안 가봤어? 나랑 가자.”

갑자기 왜 클럽을? 가도 아마 난 잘 못 놀 텐데.”

너 같이 안 가본 애들이랑 한 번씩 가면 재미가 있거든.”

 

도형 선배가 검은 빨대를 물고 씩 웃었다. 도대체 이 선배는 얼마나 많은 여자애들을 클럽에 데려가 본 걸까?

 

가서 나 얼타는 거 구경하면서 놀려고요?”

클럽가면 여자애들이 자꾸 대시해서 힘들어. 내가 좀 잘생겼니. 가서 깔끔하게 음악 듣고 놀고만 오고 싶은데······. 너 데려가면 여자들은 안 붙을 거 같아서.”

여자들이랑 놀려고 클럽 가는 거 아니었어요?”

그럴 때도 있지만, 요즘은 아냐. 내가 은근히 노래만 즐기는 순정파라.”

 

그의 나른하고 여유 있는 태도에 홀린 듯 나는 그러자고 하려다 정신을 차렸다.

 

, 일단, 생각해 볼게요.”

? 싫지는 않은가 보네? 대학생 때 클럽도 한 번 가보고 그래야지. 잘 모르는 애들끼리 가봤자 재미없으니까, 나처럼 잘 아는 사람이랑 가면 좋아. 가자!”

선배는 클럽 잘 아나 보네요? 자주 가요?”

나야 잘 알지. 나만 믿어.”

 

그럼 도형 선배랑 둘이 가면 내가 도형 선배의 여친 행세라도 해야 하는 건가? 저렇게 화려한 생김새의 남자와 함께 서 있는 내 모습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분명 어색한 모습이겠지.

 

나중에 연락할게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한 번도 안 가봐서.”

그래. 토요일에 갈 거니까, 그때 연락해.”

 

*

 

제발 오지 않았으면 했던 전시회 날이 다가왔다. 나는 흰색 민소매를 입고 하늘색 셔츠를 걸쳤다. 그러고 보니 반호도 내 것과 비슷한 옷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렴 어떤가.

시계를 보니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도 다른 조원들도 있으니 괜찮겠지. 그 남자 조원이랑은 안 친하니까 나는 다른 여자 조원이랑 붙어 다니면 괜찮겠지. 깔끔하게 전시만 딱 보고, 뒤에 밥 먹자 해도 무조건 튀는 거다. 무조건! 나는 다짐하며 밖으로 나섰다. 시간이 빠듯해서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유화 언니 진짜 미안한데, 제가 아파서 오늘 전시 못 갈 것 같아요 ㅠㅠ 저는 따로 볼게요]

 

그 여자 조원이었다. 이런, 얘랑 딱 붙어서 전시 볼 계획이었는데, 큰일이다. 아니다, 그래도 다른 남자 조원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반호는 남자 조원이랑 같이 다니고, 나는 혼자 다니면 된다. 왠지 힘든 일정이 될 거 같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

 

전시회장 앞 로비에 도착하니 반호가 서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하늘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뿔싸. 하필 비슷한 옷을. 하늘색 셔츠야 다들 흔하게 입는 옷이긴 하지만, 이렇게 겹칠 일이냐고. 평소에 검은 옷만 입는 양반이. 당장 내 하늘색 셔츠를 벗을까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추웠다. 하필 이 옷을 입고 온 나 자신을 원망하며 반호에게 다가가자 핸드폰을 보고 있던 반호가 조금 벙찐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유화야, 안녕.”

, 어 안녕.”

창민이는 못 온다는데?”

창민이? 그 남자 조원?”

. 갑자기 아프다고······.”

? 조장 여자애도 나한테 아파서 못 올 것 같다고 연락 왔는데?”

?”

 

반호와 나는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우리 둘만 전시를 봐야 하는 거였다. 이런, 이렇게 와놓고 이제 와서 같이 못 보겠다고 내뺄 수도 없고.

반호를 매일같이 보다가 한동안 안 봐서 그런지 반호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도 어색했다. 그렇게 열심히 피해 다녔는데, 이렇게 반호와 둘이 봐야 한다니. 절망스러웠다.

 

그럼, 우리 둘이서 봐야겠네. 들어가자.”

 

반호는 아무렇지 않게 티켓을 직원에게 건네고 안에 성큼성큼 들어갔다. 나도 허둥지둥 가방에서 티켓을 꺼내 직원에게 건네고 뒤따라 들어갔다.

 

안에 들어서니 빨강, 주황, 살구색이 섞인 화사한 그림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까의 당황스러운 마음도 좀 가라앉았다. 그러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반호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지. 둘만 전시를 봐야 한다는 사실에 꽂혀 잊고 있었다. 나는 하늘색 셔츠를 벗어 팔에 걸쳤다. 드러난 맨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지만 그냥 견딜 생각이었다. 남녀 둘이 있는데, 옷까지 비슷하면 무슨 데이트하러 온 사람들처럼 보일 것 아닌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말없이 그림을 보던 반호가 말했다. 고개는 나에게 돌리지 않은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