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짝사랑이 나를 사랑한다 3

by 청운0622 2025. 5. 30.

같이 가!”

 

내가 숄더백을 꽉 잡고 그를 향해 뛰어가자 반호는 웃으며 기다려주었다.

 

어디 가는 거야?”

카공하러.”

나도 카공하러 가는데. 저쪽 카페에서 할 거야?”

, 늘 가던데.”

 

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 카페라면 학교 근처에 있는, 작년에도 둘이서 스터디겸 토익 공부를 하던 곳이었다. 그것도 내가 스터디를 핑계로 같이 있고 싶어 반호를 설득한 것이지만.

 

나도 같이 갈래.”

그래.”

 

반호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활짝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방학 내내 일한 거야?”

, 아버지 일 도와주면서 그랬지. 이번에 체인점을 늘려서 일이 많아졌어.”

바빴겠네.”

 

어쩐지 그는 원래도 약간 마른 체형이지만 살이 더 빠져 있었다.

 

방학 때 일만 했으니까 이번 학기에는 공부에 좀 집중하려고. 학점도 더 올리고 싶고.”

 

반호는 다짐하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호는 보폭이 커서 같이 나란히 걷다 보면 그가 항상 앞서 있었다. 반호가 멘 검은 가방의 가방끈들이 달랑거렸다. 사실 그 아래 반호의 크고 다부진 손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부끄러워서 대신 그의 가방끈을 살짝 잡아 끌어당겼다. 당김이 느껴졌는지 반호가 뒤돌아보았다.

 

?”

걸음이 빨라. 조금만 천천히 걸어줘. 나는 오빠처럼 다리가 길지 않거든?”

 

장난을 섞은 내 말에 반호가 웃으며 걸음을 내게 맞춰 주었다.

 

반호는 어제는 막 도착해서 그런지 피곤하고 까칠해 보였는데, 오늘은 한 번씩 보이는 다정한 모습이라 나는 안도했다. 반호는 기분에 따라 엄청 까칠해 보이기도, 순해 보이기도 하는 얼굴이라 나는 반호의 얼굴표정 변화를 살피는 게 습관이 되었다. 혹시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 종알대다 반호를 귀찮게 할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카페에 도착하자 익숙한 커피 향이 풍겨 나왔다. 발을 딛자 아늑한 주황색 조명 빛이 쏟아졌다. 반호와의 추억이 있어서 그런지 내게는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너는 아메리카노 할거지?”

, 따듯한 걸로.”

내가 살게.”

 

반호가 직원에게 카드를 쑥 내밀었다. 나는 당황해 손을 저었다.

 

아냐, 뭘 사줘. 각자 계산하지.”

이 정도는 사주게 해줘. 친한 동생한테 커피 한 잔 정도는 사줄 수 있지.”

 

반호가 지갑을 꺼내려는 내 손을 저지하며 계산했다. 커피 한 잔 정도. 친한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괜히 의미 부여하게 됐다.

 

다음엔 내가 살게.”

 

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말했다.

 

서로 묵직한 가방을 푹신한 카페 의자에 내려놓은 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마주 앉아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각자 전공 공부를 했다. 반호가 책상 옆에 담뱃갑을 내려놨다. 늘 같은 것만 써서 익숙한 디자인이었다. 이름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묻지 못했다.

 

아직 학기 초인데도 과제가 나온 게 꽤 있어 할 게 많았다. 금방 집중하는 반호와 달리, 나는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남자를 앞에 두고 어떻게 공부에 집중하겠는가.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 시선이 노트북 너머 하얀빛을 받으며 집중하고 있는 그의 얼굴에 꽂혔다. 반호의 눈썹이 좀 일그러져 나는 서둘러 시선을 노트북 화면으로 옮겼다.

 

!”

 

반호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그의 큰 가방을 뒤적였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반쯤 접고 반호가 뭘 찾고 있는지 보고 있는데, 그의 가방에서 예쁜 빨간색 펜이 튀어나왔다.

 

이거, 선물이야.”

 

반호가 내게 펜을 척 내밀었다.

 

선물?”

저번에 학교 부스에서 이거 만드는 행사를 하더라고. 네 생각이 나서 했어.”

 

펜 안 투명한 관에 드라이플라워를 넣어 만든 것이었다. 반호가 그 큰 덩치로 이 조그만 예쁜 것을 만들고 있었을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고마워. 어떻게 이걸 할 생각을 했대?”

너도 나한테 많이 해줬으니까, 나도 뭔갈 해주고 싶어서.”

 

반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많이 해줬다는 건, 아마 내가 저번 학기 때 벽화 물감 남은 것으로 반호의 휴대폰 케이스와, 낡은 컨버스화를 리폼해 준 것을 말하는 것일 테다. 그때 순전히 반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열심히 그림을 그려줬던 것인데, 이렇게 보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남자가 관심도 없는 여자에게 이렇게 정성을 담은 걸 선물하기도 하나?

 

절대 안 잃어버릴게!”

 

과장되게 좋아하는 나를 보고 반호는 찌푸리듯 웃었다. 어쩌면 반호도 내게 조금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자꾸 그 생각이 커졌다. 하지만 반호가 내게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금세 저버려졌다.